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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Jan 20. 2023

부와 가난의 문제

영화 <기생충>

즘 읽고 있는 책이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인데, 오늘 본 영화 <기생충>과도 연관되는 부분이 있다.


장 지글러는 세계의 부가 제대로 분배되지 않는데 그 이유가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일한 사람에게로 제대로 이익이 분배된다면 세계의 가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데, 부가 자본가에게로 다국적 기업에게로 치우치는 것,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문제점이다.


<기생충>에는 부유한 집과 가난한 집이 나온다. 지하방에 살고 있는 4인 가족은 모두 일자리가 없는 백수이다. 그 집 아들은 재수만 하다 대학도 못 들어가고, 대학에 다니는 친구가 교환학생을 가면서 물려준 부잣집 딸 여고생 영어 고액 과외 자리에 선생으로 들어가게 된다. 학위를 문서로 위조하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면서 차례로 누나는 과외생 동생의 미술교사로, 아버지는 사장님 운전기사로, 어머니는 가정부로 소개해 부잣집에서 모두 일을 하게 된다.


어느 정도 잘 지내는가 싶은데, 부잣집은 아들 생일잔치를 위해 캠핑을 떠나고, 가난한 집 사람들은 그 집을 독차지하고 거실에서 술잔치를 벌인다. 비는 쏟아지고 천둥번개도 친다. 쫓겨난 가정부가 밤중에 찾아와 지하실에 무얼 두고 갔다며, 지하실로 내려가는데, 그곳에 사업하다 망해서 빚을 진 가정부의 남편이 숨어 살고 있다. 가정부를 하면서도 빚쟁이들을 피해 지하실에 숨겨두고 먹을 것을 갖다 주곤 했다


새로 가정부가 된 가족과 이전 가정부 부부 사이에 지하실에서 벌어지는 사투, 비밀이 들통날까 봐 서로 비슷한 처지이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핥고 물어뜯는다.  


캠핑 갔던 부잣집 가족이 돌아오고,  부랴부랴 뒷수습을 하는 가난한 가족, 간신히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가는데 지하방은 수해가 나서 물속에 잠겼다.


돌아온 부잣집 가족은 주말에 집 정원에서 아들 생일파티를 하는데, 지하실에 두고 나온 문제를 해결하려고 돌멩이를 들고 들어간 가난한 집 아들 과외선생, 이전 가정부 남편의 목줄 덫에 걸려 혈투 끝에 뇌를 다치고 쓰러진다.


밖으로 나온 이전 가정부의 남편, 부엌에서 칼을 들고 생일 파티장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는 가난한 집 딸, 미술과외선생의 가슴에 칼을 꽂는다. 부잣집 운전기사인 가난한 집 아버지는 그 칼을 빼서는 또 부잣집 사장의 가슴에 꽂는다. 이른바 '묻지 마 살인'이다.


영어과외선생을 하던 가난한 집 아들은 수술 후 살아나고, 살인을 저지른 후 행방불명된 아버지는 부잣집 지하실로 숨어 들어가 산다. 깜빡이 등을 통해 모스 부호로 아버지와 아들은 편지를 교환하는데, 아들은 돈을 많이 벌어 그 집을 사서 아버지를 지하실에서 걸어 나오게 하겠다고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   


참 씁쓸한 영화이다. 칸 국제영화제에서는 모든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이 작품에 황금종려상을 수여했다는데, 가난이 가난을 낳고 가난이 범죄를 낳고, 결국 우리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은 어러운 것일까? 묻고 또 물어보는 시간이다.


장 지글러에 의하면 어려운 일이다. 가진 자요 부자인 자가 절대로 자기의 것을 가난한 자와 나누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리어 가난한 자를 더 착취하고 부려먹기만 한다. 가난한 자들이 죽음에 내몰릴 때까지. 이것이 돈을 쫓아가는 자본주의의 실체요, 비극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라고 쓰고 있는 것이리라.  땅에서 많은 부를 소유한 자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얼마나 돈을 쫓아 살고 있는 것일까? 돈에서 자유한 자라야 진정한 천국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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