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어떻게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 수 있을까? 더욱이 피해자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하지 못하는 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사람들은 도처에 부지기수로 살아가고 있다. 할 말을 하지 못해서 억울하고 분하고 심지어는 정신병에다 육체적인 질병에 걸리기도 한다. 배설을 해야 하는데 배설하지 못해서 쌓이고 쌓여서 그만 병이 되고 마는 것이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이다. 꼭 해야 할 말이 있다. 이제라도, 이렇게라도, 시원하게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러나 또한 시대의 아픔이 아닌 지극히 개인사적인 일이라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서도 전혀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까? 가진 자가 갑질을 하는데, 부도 명예도 권력도 건강도 학벌도 더 많이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에게 힘으로 밀어붙이는데,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면서, 자본주의라고 하면서, 여전히 갑질이 남아있는데, 정치와 아부와 편파가 판을 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하지 못하고 산다. 일자리를 잃을까 봐, 불이익을 당할까 봐, 가족들이 창피해할까 봐...
이 영화는 이 시대에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아이 캔 스피크》의 전반부는 시장통의 왈가닥 할머니 옥분이 잘못된 구청행정의 민원을 수도 없이 제기하면서 민원서류를 접수하며 비교적 경쾌하고 활발하게 출발한다. 민원업무로 구청을 찾아간 옥분은 영어를 배우고 싶어서 구청 9급 공무원 민재와 얽힌다. 그러면서 민재는 옥분 할머니에 대해서 조금씩 더 알아간다. 미국에 입양되어 살아가는, 한국말을 모르는,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을 만나기 위해 옥분 할머니가 영어를 배운다는 것과 외로워서 시장통을 휘젓고 다닌다는 것과.
그러나 후반부로 가면서 옥분은 친구 명심이를 만나게 되고 치매증세가 있는 명심이 병상에서 의식불명이 되자 옥분은 그녀가 살아온 삶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함께 위안부로 끌려갔던 명심이 남긴 편지를 읽으며 위안부의 진실을 알리려고 이곳저곳 증언을 하며 열심히 살아온 명심의 뒤를 이어 자신도 위안부의 진실을 밝히기로 한다. 미국인권위원회에 가서 증언을 한다. 가족도 엄마도 창피하다고, 동생도 부끄럽다고, 옥분할머니를 모른 체 하며 내동댕이쳤지만, 그래서 위안부 피해자 등록도 하지 않은 채 혼자 외롭게 살아가야 했지만...
어느 날 용기 있는 증언을 하기로 결심하고 미국으로 떠난다. 몸에 새겨진 흔적들과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내며 그녀는 유창한 영어로 진실을 밝힌다. 진정한 사과를 하라고 일본군에게 잘못 시인을 촉구한다. 그녀의 옆에는 인권위원회와 7급 공무원(9급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민재가 함께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그녀는 혼자가 아니다. 남동생도 그녀의 용기 있는 행동을 방송에서 보고 직접 찾아와 서로 부둥켜안는다.
휴먼 영화이다. 대목대목 눈시울이 붉어져 손수건으로 훔쳐낸다. 누가 그녀들의 삶에 돌을 던지겠는가? 망국의 설움을 온몸으로 체휼해야 했던 13살 소녀 옥분과 명심의 삶에 더 이상 부끄러움은 없다. 역사는 증언할 것이다. 아직도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는 일본제국의 잘못에 대해. 이 영화는 그러한 증거물 중의 하나가 되리라.
시대의 잘못처럼 개인의 잘못들도 양심의 거울에 비추어보아 잘못을 시인하고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삶이 되기를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