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여행(2) : 연화지+방초정
김천 연화지로 간다. 이름만 들어서는 ‘연꽃이 예쁜 연못’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연화지(蓮花池)라면 보통은 ‘연꽃이 피는 연못’이라는 뜻이지만, 김천 연화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조선 시대 군수였던 윤택이 꿈에서 솔개가 봉황으로 변해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고, 이를 길한 징조로 여겨 ‘연화지(鳶化池)’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연(鳶)’은 '솔개', ‘화(化)’는 '변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곳은 변화와 희망, 비상을 상징하는 공간이 된다.
연못 한가운데로 가는 다리를 지나면 봉황대가 있고 또 봉황교를 지나면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작은 섬이 있다. 그곳에 철쭉이 한창이었다. 벚꽃은 이미 지나간 뒤여서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대신 마주한 철쭉 풍경은 생각보다 더 진하고 깊었다. 화려한 진분홍빛 철쭉이 섬 한가운데 동그랗게 모여서 활짝 피어 있고, 옆에는 커다란 고목들이 서 있었다. 철쭉화단 둘레를 돌며 철쭉과 연화지 호수를 보고 흙길을 따라 철쭉이 핀 가운데로도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양손으로 꽃을 만지며 향기를 맡아 가슴에 담고 위를 바라보니 고목에서 뻗어간 가지에 연둣빛 나뭇잎들 사이로 햇살이 부서져 내렸다. 아침에는 날씨가 흐렸지만 연화지로 오니 하늘이 시원스레 열렸다.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아서 더 좋았다. 사진을 찍기 위해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그저 천천히 걷고, 잠시 서서 풍경과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순간에는
‘솔개가 봉황으로 변한다’는 이야기가 괜히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상의 때는 언제나 있을 수 있다. 꿈을 꾼다면 말이다. 지금 솔개일지라도 날아오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봉황은 그 언제라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조용한 곳에서 마음이 조금씩 바뀌는 느낌, 그게 어쩌면 이곳이 가진 진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연화지는 벚꽃이 유명하다지만, 조금 늦게 찾아온 덕분에 오히려 더 천천히, 더 깊게 이곳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에는 벚꽃이 필 때 다시 와보고 싶긴 하다. 그렇지만 오늘의 철쭉 풍경도, 봉황대의 모습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어쩌면 여행이라는 건 가장 예쁜 순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 있는 풍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린 일인지도 모르겠다.
방초정으로 간다. 방초정 최씨담은 연화지에 비해 아주 작은 연못이다. 그 대신 600년이 넘은 고목이 네모난 연못 가에 있고 연못 한가운데 섬이 두 개가 있다. 방초정은 단순히 경치가 좋은 곳인 줄만 알았는데, 그곳에 깃든 역사와 함께 수백 년의 세월을 견딘 고목들을 마주하니 더욱 감동적이었다.
방초정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최씨담(연못) 주변의 고목들이었다. 특히 연못 한편에서 만난 600년 된 고목은 그 크기와 위용이 압도적이었다. 거친 껍질과 뒤틀린 몸통에는 600년이라는 긴 시간이 오롯이 새겨져 있는 듯했다. 이 나무는 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 방초정의 모든 역사와 함께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묵묵히 지켜봐 왔을 것이다. 그 거대한 숨결 앞에 서니 내 마음까지 숙연해졌다.
그리고 이 나무뿐만 아니라 연못 주변으로 오래된 고목들이 두세 그루 더 자리 잡고 있어, 이곳이 아주 오랜 전부터 이곳을 지켜온 터전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고목들이 만들어내는 짙은 그늘과 싱그러운 초록은 방초정의 풍경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 주었다.
고목들의 그늘 아래 자리 잡은 예쁜 연못, <최씨담>에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임진왜란 당시, 겨우 17세였던 화순 최씨 부인은 시댁 식구들을 찾아가던 중 왜병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끝까지 정절을 지키기 위해 이 연못에 몸을 던졌고, 그녀를 지키던 몸종 석이 또한 주인을 따라 함께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후에 남편 이정복 선생이 부인을 그리워하며 연못을 정비하고 정자를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보는 방초정의 시작이다.
사각형의 연못 최씨담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엄 있게 서 있는 정자가 방초정이다. 이곳은 조선 시대 방초 이정복 선생이 지은 정자로,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홍수로 유실되었다가 다시 지어지는 등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자리에 잡게 되었다고 한다. 중앙에 온돌방을 두고 사방이 마루로 둘러싸인 독특한 구조인데, 여름엔 시원한 바람이 들고 겨울엔 따뜻한 온기를 품었을 그 옛날 선비들의 지혜가 느껴졌다.
방초정은 2층으로 되어 있는데 올라가니 천장 모습이 특이했다. 서까래 모습이 다 드러난 것과 뭐라고 글씨를 써놓은 모습, 한지를 바른 문을 위로 올려 매달아 놓은 모습 등이 옛 한옥을 그대로 재현해 놓아서 고풍스러웠다.
방초정 옆에는 <절부 화순 최씨 정려각>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인조 임금이 최씨 부인의 절개를 기려 직접 쓴 정려문이 내려왔다는 기록을 보니, 당시 이 사건이 얼마나 큰 울림을 주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정려각 아래 적힌 안내문을 찬찬히 읽어보니, 주인과 끝까지 운명을 함께한 여종 석이의 충심 또한 잊지 않고 기록되어 있어 마음이 더 뭉클해졌다.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에 위치한 방초정은 가이드님이 안내해 주신 대로 다음 사항을 눈여겨보았다.
1. 최씨담 주변의 600년 된 거대한 고목과 주변 고목들의 위용 느끼기
2. 정자 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최씨담의 전경
3. 정려각 안내문을 통해 화순 최씨와 석이의 이야기 되새기기
4. 주변 연안 이씨 집성촌의 고요한 마을 분위기 만끽하기
화려하진 않지만 정갈하고, 슬프지만 꼿꼿한 선비의 기개가 느껴지는 곳, 방초정에서 수백 년 된 고목의 숨결과 고요한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