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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마니아

영화 《변산》

by 서순오

《변산》은 가슴에 꼬옥 안아주고 싶은 영화이다. 시가 흐르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고, 그리고 랩이 춤추는 영화이다.


조폭이면서 바람피우는 아버지로 인해 전혀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외아들 학수는 어머니의 외로운 죽음 후에 고향을 등진다.


♤내 고향은 폐향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것이 노을밖에 없다.♤


학수가 고교시절에 습작노트에 쓴 시이다.


그리 녹록지 않은 삶에 자칫 삐뚤어질 수도 있는 주인공 학수의 삶은 여주인공 선미의 첫사랑에 꽂히면서 전혀 다른 정면승부의 삶으로 바뀐다. 고교시절 동창생들이 청년이 되어 저마다 다르게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니 인생이란 그런 것이지 싶다.


학창 시절 학수는 시를 잘 써서 백일장에서 대상을 받기도 하는데, 운명은 전혀 다른 삶으로 그를 이끈다. 학수의 시작노트를 훔쳐간 국어선생님이 학수의 시로 등단을 해서 시인이 되고 정치인을 겨냥한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학수는 고향을 떠나 서울로 상경해서 극빈청년의 고단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학수는 서울에서 편의점 알바를 하며 고시원에 살면서도 래퍼로서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실력은 상당한 경지에 이른다. 곧 정상에 오르는가 싶은데, 안타깝게도 6번째 오디션에서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을 하다가 목이 메어 뒷부분을 이어가지 못해 떨어지고 만다. 마침 그때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 학수는 선미와 재회하게 되는데, 선미는 《노을 마니아》라는 소설을 쓴 작가이자 공무원이 되어 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완성된다."

"비겁하게 도망 다니지 말고 정면으로 너를 봐."

"내가 노을을 좋아하는 건 수평선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노을은 하늘을 꽉 채워주잖아."

"노을이 너에게 비단옷을 입혀주는 것 같지 않아!"


《변산》은 명대사들이 많은 영화이기도 하다. 선미와 학수의 입을 통해 순간순간 명언들이 터져 나온다.


학수가 부르는 랩의 가사들도 시적이다. 마치 노벨문학상 수상자 음유시인 밥딜런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처럼 말이다. 너무나 빨리 지나가서 받아 적을 수는 없지만 귓전에 울리는 경쾌함과 노랫말이 보는 이의 감성을 흔들어댄다.


엎치락 뒤치락. 어린 시절 학수의 부하이었던 용대는 조폭이 되어 학수를 괴롭히지만, 용대가 학수 아버지를 형님으로 부르는 등 그 관계가 얽히고설켜 있다. 조폭 아버지는 아들 학수가 그 길에 빠질까 염려를 하며 승부를 내라고 한다. 갯벌에서 학수와 용대의 대결은 치열하면서도 유머러스하다. 동창생들이 모여들며 응원전을 펼치고 싸우다 짜장면을 먹다가 또 싸운다. 둘 사이에 승부는 없다. 그러나 싸운 후에 삶의 체증이 다 씻겨 내려가는 듯 속이 후련하다!


어쩌면 누구나 그런 싸움을 해보고 싶을 런지도 모른다.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삶의 질곡 속에서, 자신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그래서 누군가에게 핑계를 대고 책임을 떠맡기고 싶은 사람들, 누구나 다 한 번쯤은 그런 죽기 살기의 결투를 해보고 싶을 런지도 모른다.


끝부분에 가서 학수와 선미는 첫사랑을 이룬다. 결혼식의 뮤지컬이 경쾌하다. 네티즌들이 뽑은 다시 보고 싶은 래퍼로 선정된 학수는 결국 무대에 서게 되고, 선미는 《노을 마니아》로 내일의 작가상을 받게 된다. 해피 엔딩이다.


잘 만들어진 좋은 영화를 보고 많이 웃고 감동한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아버지와의 화해, 자신을 첫사랑으로 삼은 순수한 소녀와의 결혼, 그리고 꿈꾸던 래퍼로, 내일의 작가로 거듭나는 청춘들의 이야기가 아름답다. 다보고 싶은 나의 영화 목록에 《변산》을 살짝 추가한다.

영화 《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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