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글자도 그림도 없는 책

by 서순오

성경학교 기간 동안 이상한 책을 보았어요. 아주 작고 얇아서 손안에 쏘옥 들어오는 것이에요. 하얀색, 검정색, 빨강색, 황금색이 각각 한 장씩으로 된 책인데, 글자도 그림도 없었어요. 뭐 책이랄 것 까지도 없는 것을 서울언니들은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손에 꼬옥 쥐고 다녔어요. 밥을 먹을 때나 손을 씻을 때는 주머니에 살짝 넣었다가 일을 마치고는 다시 꺼내서 들고 다니죠.

“자, 여길 봐요. 하나님께서 만드신 처음 세상은 하얀색이었어요. 모든 것이 완전하고 깨끗하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죠. 그곳 ‘에덴동산’에는 아담과 하와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어요. 어느 날, 아담과 하와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서 동산 한가운데 있는 ‘선악과’의 열매를 따먹고 말았어요. 하나님께서 그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절대로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었어요. 그 순간 죄가 세상에 들어와서 까만색이 되었어요. 죽음, 고통, 저주, 절망 허무, 질투, 미움 같은 것들이 사람들을 괴롭혔어요.”

둘째 날 김끝예언니가 들려준 이야기예요.

셋째 날 강빛나언니는 빨간색을 펼쳐 보이면서 이야기했어요.

“이 빨강색은 아담과 하와로 인해 우리에게 들어온 죄를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대신 씻어주신 것을 나타내요. 무서운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외아들 예수님을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한 것이에요.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죄를 없앨 수가 없었죠.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지만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자기 목숨을 대신 내어주신 거예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은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하늘나라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셔요. 천국은 이렇게 황금빛으로 빛나는 아름답고도 영원한 곳이에요. 이제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지요.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세요. 예수님이 내 마음에 들어오시도록 믿는 마음으로 가슴에 손을 얹으세요. 다 같이 기도할게요.”

저는 언니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할 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어요. 예수님이 사랑스럽게 저를 품에 안아주시는 것 같았어요.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나왔어요. 그동안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기쁨의 강물이 마음속에 가득 넘쳐흘렀어요.

“자, 인제 이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여러분이 예수님을 전할 차례가 되었어요. 내일부터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예수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세요. 엄마, 아빠, 할머니, 언니, 동생...... 누구에게든지 예수님을 전해 보세요. 그리고 그분들을 모시고 이곳에 나오세요. 내일은 ‘천국잔치’를 할 거예요. 맛있는 것도 많이 많이 준비했어요. 꼭 모시고 나오세요. 알았죠?”

“네.”

전 결심했어요. 제일 먼저 주막으로 달려가서 아버지께 ‘예수님 이야기’를 해드리려고요. 아버지를 생각만 해도 밉고 싫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마음이 눈 녹듯이 다 사라지고 아버지가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냥 오지 않고 삼거리 주막으로 갔어요.

“아부지-, 아부지~”

무섭고 떨려서 한 번도 제대로 불러본 적이 없는 ‘아버지’라는 이름을 제법 우렁차게 불러보았어요. 뜻밖의 방문을 받은 아버지는 이상하다는 듯이 방문을 삐죽 열어보였어요.

“와, 누구냐? ”

아버지의 말투가 예전과는 좀 다르게 정다웠어요.

“아부지, 설이 왔어라오.”

”그래, 뭐 하로 왔냐 응?“

아버지가 담배를 한 가치 빼어 물고 밖으로 나왔어요.

저는 주춤하다가 용기를 내서 아버지 손을 대뜸 잡았어요.

“아부지가 보고 싶어서 왔어라오.”

“내가 보고 싶어서? 허, 고놈 참 내 살다 살다 별일을 다 보겄네 잉?”

그리고는 아버지가 제 눈을 빤히 쳐다보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그만 저는 아버지 손을 놓고 뒤로 한 걸음 주춤 물러나서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어요.

“그랴, 가자, 앞장서그라.”

아버지가 순순히 저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겠어요? 아버지는 구성진 심청전의 창 가락을 읊으면서 갈지자 걸음으로 비틀비틀 제 뒤를 따라왔어요.

“웬일이까, 아부지가? 내일은 정말루 아부지를 모시고 ‘천국잔치’에 갈 수 있으까? 하나님, 우리 아부지가 예수님을 믿게 해 주세요. 아멘”

제가 걸어가는 만큼 내일이 빨리 오기라도 할 것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제 발걸음이 자꾸만 빨라졌어요. 저는 글자도 그림도 없는 책을 손에 꼬옥 쥐고 걸어갔어요.

“어떻게 하까? 어떻게? 어떻게?"

자꾸 손에 땀이 나서 책이 찢어질까 봐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책을 옮겨가면서도 저는 곁눈질로 아버지의 동작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앞으로 옮겨 딛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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