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축친놈 05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재 Nov 08. 2024

카탈루냐의 심장

 리버풀에 스티븐 제라드가 있다면 바르셀로나에는 카를레스 푸욜이 있다. 푸욜 역시 제라드와 마찬가지로 바르셀로나에서 심장을 담당하고 있다. 처음부터 심장을 담당했던 것은 아니고 영겁의 시간이 쌓인 후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는 바르셀로나의 원클럽맨이자 주장이었다. 원클럽맨이란 선수가 본인의 프로 커리어 기간 동안 단 한 번의 이적 없이 오직 한 팀에만 있는 것을 뜻한다. 현대축구에서 원클럽맨을 찾아보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푸욜 같은 선수가 더 그리워지는 것 같다. 그는 주장이라는 단어와도 참 잘 맞는 선수였다. 배려, 카리스마, 포용력, 실력 등 주장이 갖추어야 할 자질을 다 갖추었다. 본업인 수비 실력은 당연하고 경기장 내, 외부에서 보여주는 리더십인성은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이미 정평이 나있었다.


 푸욜의 인성을 보여주는 여러 일화가 있는데, 한 번은 동료 헤라르드 피케관중이 던진 라이터맞고 심판에게 항의하며 시간을 지연시키려고 했다. 피케의 의도를 눈치챈 푸욜은 재빨리 그에게 라이터를 빼앗고 경기장 밖으로 던진 뒤 말했다. "닥치고 경기에나 집중해" 충분히 시간을 지체해서 더 손쉽게 승리할 수 있었을 텐데 역지사지의 마인드인가? 이처럼 시간을 지연하는 행위에 대해 매너가 있다. 침대 축구를 하는 나라에서 축구 코치로 써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상대팀에 대한 배려심도 깊다. 이미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골을 넣고 모여서 춤을 추는 동료들을 나무란 적도 있었다. 그리고 동료들을 꾸짖고는 경기를 속개시켰다. 아마 타 팀 팬들은 정말 고마웠을 것이다. 안 그래도 지고 있는데 앞에서 춤까지 춰버리면 그게 조롱처럼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니까. 상대팀까지 존중하는 이런 모습은 타의 귀감이 되기엔 충분하다. 또 어느 날은 경기 중 푸욜이 을 맞은 적이 있는데(라모스 아님. 라모스한테도 맞았지만 다른 사람임. 어쨌든 아님.) 천하의 미소천사 호나우지뉴가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를 가장 먼저 말린 것은 상대팀이 아닌 뺨을 맞은 푸욜이었다.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호나우지뉴를 밀어냈다. 


 이때의 사건이 충격이 컸는지 호나우지뉴는 이적 후에도 푸욜을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는 눈치였다. 호나우지뉴가 AC밀란으로 이적한 후에 바르셀로나와 만났다. 당연히 잇몸을 만개시키며 푸욜과 반갑게 인사했다. 푸욜은 팀의 레전드인 친구를 잊지 않았다. 바르셀로나 시절 발롱도르까지 받았던 옛 동료를 캄프 누(바르셀로나의 홈구장의 옛 이름)에서 만나자, 그에게 같이 사진을 것을 제안했다. 호나우지뉴는 기분 좋게 사진을 찍었고 그때 사진을 보면 아이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있는 사진인데 모두 바르셀로나의 옷을 입고 있고 호나우지뉴만 다른 옷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푸욜의 인성에 대해서 거론할 때에는 꼭 빠져서는 안 되는 이야기가 있다. 원래 팀이 우승을 하면 우승컵은 당연히 주장이 힘차게 들어 올린다. 바르셀로나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했을 당시에 푸욜은 트로피를 가장 먼저 들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본인이 주장임에도 절친한 동료 에릭 아비달에게 주장 완장까지 넘기며 우승컵을 들어 올리게 했다. 이때의 아비달은 이때 걸렸었고 수술을 받고 돌아온 그를 위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런 푸욜의 선행에도 불구하고 아비달은 간암이 재발하여 선수 복귀에는 더 긴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때 감독이던 빌라노바도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고 있었다. 본인이 헌신하고 있는 클럽에서 동료 선수와 감독이 힘든 시기에 놓인 그 순간, 카탈루냐의 심장 푸욜은 두 사람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이번에는 라리가에서 우승한 뒤 그 두 사람에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게 했다. 개인적으로 한 선수의 인성에 대해서 감탄한 적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물론 축구는 우리에게 흥밋거리를 주는 스포츠임에는 틀림없지만, 역시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있는 것 같다. 푸욜은 그 보이지 않는 가치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졌기에 아직까지 우리들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힘든가?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 카를레스 푸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