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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축친놈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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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재 Nov 08. 2024

딸바보

 중학생 시절 즐겨하던 축구 게임에서 나는 독일 대표팀으로 선수단을 꾸렸다. 내 선수단에는 '로베르트 엔케'라는 선수가 있었다. 포지션은 골키퍼였고 그렇게 유명한 선수는 아니었다. 오히려 유명한 선수가 아니어서 나만 알고 있는 선수라는 생각으로 더 애착이 가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경기영상도 찾아보며 응원하는 마음을 품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정말 좋아했던 그 선수는 어느 날 갑자기 게임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엔케독일 국적의 골키퍼였고 나름 재능을 인정받으며 묀헨 글라트바흐에서 어린 나이에 주전을 꿰찬 선수였다. 하지만 그의 야망과는 달리 팀은 성적부진으로 하위 리그로 강등이 되었고 그는 이적을 감행했다. 결국 그는 본인의 바람대로 팀을 옮겼고 포르투갈의 벤피카에서 본인의 기량을 만개시킨다. 이 모습을 유심히 보던 바르셀로나는 엔케를 영입하기로 한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욕심이 너무 과했던 탓인지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내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버렸다. 이 사건으로 인해 엔케의 자신감은 바닥을 쳤고 이는 다시 운동장에서 나타났다. 어느 팀에서 경기를 해도 예전과 같은 실력은 나오지 않았고, 날이 갈수록 우울함과 좌절감이 그를 지배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존재였다. 그의 아내는 엔케가 포기하지 않고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함께 버텨 주었다. 그리고 그 시기에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엔케의 상처를 보듬어 주었다. 


 기쁨도 잠시 엔케 부부는 의사로부터 충격적인 낙태 권고를 받게 된다. 아이가 문제를 가지고 태어날 확률이 크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부부는 아이를 포기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슬프게도 아이가 태어난 후 진행한 검사에서 의사의 예상이 맞아 버렸다. 그렇게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하게 태어났던 부부의 딸은 세상의 빛을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술을 했다. 부부의 딸은 수술의 후유증으로 청력을 잃게 되었지만 힘든 수술을 잘 버텨주었다.


 엔케는 본인이 힘들 때, 아내와 딸이 잡아준 것을 생각하며 가족들에게 보답하고자 했다. 사랑하는 가족들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때마침 독일의 팀인 하노버에서 골키퍼를 구하고 있었고 구단의 입장에서 엔케는 상당히 매력적인 카드였다. 그렇게 엔케는 이적을 하게 되고 역사를 써 내려간다. 강등권 경쟁을 해야 하는 팀에서 눈부신 활약으로 꼬였던 자신의 커리어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전차군단의 명단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엔케는 늘 가족을 생각하며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


 얼마 뒤 시즌 시작을 앞두고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너무 어린 엔케의 딸이 반복되는 수술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하늘의 별이 된 것이다. 선수들과 팬들 모두 엔케의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막상 시즌이 시작된 후 경기에 나선 엔케는 팬들의 예상과는 반대로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뛰어난 활약으로 리그 베스트 골키퍼까지 수상한다. 일각에서는 그가 참척의 고통을 견뎌낸 것으로 보는 시선도 있었다. 엔케의 이 일화는 축구계에 큰 감동을 주었고 이로 인해 많은 팬들의 응원을 받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부부는 생후 2개월 된 딸을 입양한다. 엔케는 변함없는 실력을 과시했고 오히려 전보다 노련해졌다. 결국 월드컵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때문에 이어지는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독일의 골문을 지킬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월드컵이 열리기 몇 달 전 독일 전역을 충격에 빠뜨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한 축구선수가 철로에 뛰어들어 사망했다는 소식이다. 엔케였다. 한 국가의 대표이기 전에 한 명의 사람이었고 딸을 가진 아버지였다. 그렇게 그는 딸을 잃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딸을 만나러 갔다. 엔케의 아내는 "엔케는 사실 지속적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딸의 죽음으로 인한 우울증이 매스컴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불안해했습니다. 또 이 사실로 인해 입양된 아이를 빼앗길까 하는 두려움 등 여러 걱정들이 겹쳐 그는 이를 숨겼습니다. 지나친 비난과 압박감에서 비롯된 우울증이 그를 조금 일찍 데려갔지만 그는 분명히 멋진 남편이었고 훌륭한 아버지였습니다."라며 홀로 우울증과 싸우며 눈부시게 활약했던 엔케의 이야기를 전했다. 


 날이 밝자 엔케의 소속팀 하노버의 홈구장에서 엔케의 장례식이 열렸다. 수많은 팬들과 선수들은 그를 추모하기 위해 경기장에 모였다. 장례식 이후 엔케는 딸과 함께 안장되며 그토록 원하던 딸과의 재회에 성공했다. 엔케의 구단 하노버는 이러한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선수들을 위한 우울증 재단을 설립했고 그를 추모하는 의미를 담아 홈 경기장 인근 거리의 이름을 '로베르트 엔케 거리'로 바꾸었다. 월드컵을 앞둔 독일의 뢰브 감독은 "우리의 행진에는 언제나 엔케가 함께할 것입니다. 여기 남아공에도 아직 그가 남아있습니다."라며 떠나간 그를 추억했다. 그리고 뢰브가 한 말은 실제로 이루어졌다. 엔케가 출전하기로 했던 국가대표 경기에서 그의 이름과 번호가 새겨진 1번 유니폼이 벤치에 놓여 있었다. 엔케와 함께 월드컵을 나가야 했던 독일은 엔케의 공백을 채워야 했다. 때문에 당시 서브였던 골키퍼를 주전으로 쓰게 된다. 


이때 엔케의 장갑을 이어받은 후보 선수는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반열에 오른 '마누엘 노이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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