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인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by 동그라미

캔디는 슬퍼도 울지 않고, 개구리 왕눈이는 일곱번 넘어져도 여덟번 일어선다. 90년대생은 애초에 포기나 실패를 옵션에 넣어 배우지를 못했다. 올 해도 새 해를 크게 앓으면서 시작하게 되었다. 일전처럼 감기나 장염을 크게 앓으려나 걱정했는데 그 모든 걸 피해갔더니 아주 크게 넘어졌다. 국가 대항전의 야구 선수도 나만큼 어설프고 과격하게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하지는 않을 거고, 명랑 만화 주인공이나 시트콤의 주인공들도 나만큼 요란하게 넘어질 수는 없다. 포크레인과 레미콘이 오가는 공사장에서 들어갈 틈을 찾으며 건물을 한 바퀴 돌면서 겨우 구멍을 찾다가 발을 딛자마자 바로 자빠지면서 신발이 뒤로 날아가고 나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앞으로 쓰러졌다. 발등에서부터 뒷목까지 전부 부상 부위에 들어갔고, 넘어지자마자 오 좆됐는데? 싶으며 일어설 엄두조차 내지 못했고, 지나가던 사람들의 91%는 눈을 돌려줬고(현대인의 매너라고 생각한다) 아빠 또래의 아저씨 한 분이 저 멀리 날아간 내 신발을 두 짝 들고 아이고,, 하고 다가와주셨다. 볼 일이 있어 그 공사장을 꿰뚫고 들어갈 틈을 찾고 있던 참이라 일단 30초 정도 앉아서 먼지를 털다가 포기하고는 일어서 다시 볼일을 보러 들어갔다. 아쉬운 소리를 하러 간 참이었는데 내 처참한 흙투성이 몰골을 보고 다행히도 연민을 느끼셔서 일을 잘 처리해주셨다. 겨우 찾아온 우편물은 적십자사의 기부 요청 메일이라서 아주 잠깐 적십자에대한 분노가 치밀었지만 이미 자빠진건 자빠진거니까 그들을 더 탓하지 않기로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다행히 피도 안났고, 발목도 안 삔 것 같다. 넘어지자마자는 3n년간의 경험을 담아 아주 좆됐음을 예견했지만 순간을 지나보니 아주 우스꽝스럽게 쪽만 팔았던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몇 시간 뒤부터 아주 심각해졌다. 일단 발등의 고통이 사라지지 않았다. 제대로 걷기가 불가능한 정도라 절뚝거리며 저녁 일정을 치뤄냈다. 넘어지면서 뭐가 잘 못된건지 모르겠는데 팔뚝이 덜덜 떨리는 바람에 손으로 뭘 쥐기가 두려울 정도였는데 그 것 또한 찰나의 고통은 아니었고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고 있다. 아, 지금은 넘어진지 약 50시간 정도가 지난 시점이다. 아직도 발등은 멍 하나 없이 아프기만 해서 나를 절뚝거리게 만들고 있고, 왼쪽 허벅지는 찰과상과 함께 멍이 올라오고 있으며 양쪽 어깨는 모두 근육통이 상당해서 왼쪽 승모근과 옆목까지 아프다. 가장 큰 부상이라 할 수 있는 왼손가락은 약지와 소지가 모두 새까맣게 멍이들고 부어올라서 제대로 타이핑을 한다거나 쥐는 행위가 어렵다. 어깨와 손이 모두 나갔으니 머리 감는 행위 조차 제대로 치루기가 어려워져서 더러운 얘기지만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약지에는 손톱의 때가 미세하게 남아있다.

몸이 이렇게 난장판이 되어서 출근해서는 해야 할 업무조차도 제자리에 앉아서 처리 할 수 있는게 아니면 미루고 있는 실정인데, 퇴근하자마자 다시 포기를 배우지 못한 불굴의 30대의 롤로 돌아와 오늘도 저녁 약속을 취소하지 못하고 술자리에 나타났다. 챗 지피티가 48시간이 넘어서까지 까만 멍과 붓기가 나타난다면 병원을 갈 것을 권고했지만, 병원에서 약을 타면 100%의 확률로 술을 못 먹을게 뻔해서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타난 술자리건만 상대방은 일정상 나타나는게 어려워져서 결국 금요일 밤 혼자서 술과 독서를 하며 바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분위기를 단단히 깨고 있지만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자리를 버티고 앉아있다. 이 정도면 그냥 선택적 뻔뻔함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오늘 술과 함께 읽은 책은 '새로고침 서양미술사'다. 며칠 전 막내 동생의 학부 졸업식을 이유로 이틀이나 연차를 쓰고 서울을 다녀왔다. 졸업식은 화요일이었지만 나는 월요일까지 연차를 내고 일요일 오후부터 서울로 올라가있었다. 도착하자마자 고속버스터미널에 있는 한가람 미술관에서 홀베인 유화 물감을 낱개로 하나 더 추가구매했고, 막내동생이랑 저녁을 먹고 집에 갔다. 다음 날은 퇴마록 4DX를 시작으로 현대미술관의 인상파: 모네에서 빛으로 전시를 보고 낮술과 함께 브런치를 먹고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동해서 도서관에서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 도록을 두 권 독파했다. 오전에는 현대 미술관에서 베를린 분리파 작품들을 몇몇 챙겨봤다면 오후에는 비엔나 분리파 회원들을 만나는 굉장히 유럽적인 일정이다. 그래서 독서를 끝내고는 고려 청자 특별 전시도 놓치지 않았다. 그야 말로 예술로 점철된 일주일을 보내는 중이다.

그 와중에 나의 공사장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은 하나의 우스꽝스러운 오류이자 예술로 쳐주기 어렵지 않을까 싶은 일정인데, 오늘 독서를 하다가 마음을 바꿔 먹었다. 반 에이크는 우리에게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화가다. 단순히 그 작품의 의의라던가 작품 속 숨겨진 상징성에대해서만 배울 수 있었다면 나의 헤퍼슬은 예술의 카테고리로 들어오지 못했다. 하지만 그 작가가 자화상이라는 단어조차 확립되지 않은 시기에 "반 에이크가 나를 만들었다."라며 자화상에 이름을 새기고, 액자 위 쪽에 '내가 할 수 있는 한(Als ich kan)'이라는 단어를 새겨가며 진실되게 자기를 받아들이는 순간을 배우는 중에는 멋있어 보이는 선택적 테마 만들기가 조금 부끄럽다. 개인은 자기를 기록함으로써 태어나고, 기록은 스토리라고 저자가 말한다. 핍진성에대한 중요성은 그 앞에 적혀있는 티치아노와 거울 앞의 비너스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마조히즘의 어원이 되는 소설 '모피 비너스를 입은 비너스'는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신처럼 떠받들어주며 단 한가지를 요구한다. 그를 채찍질하며 노예처럼 부려주길. 여자는 남자의 요청을 들어주고, 행복해보이지만 그 건 가짜 행복이다. 물론 변태같은 남자가 되도 안한 요구를 한게 이 모든 일에서의 가장 큰 문제겠지만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남자의 '베품'과 '인정'에서 찾은 여자에게서도 허무가 가장 크게 남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헤퍼슬조차 내 인생으로 기록해야하고, 이번 주의 이벤트로 다루어야 한다는 어떠한 재촉을 느꼈다. 현대백화점에서 만난 인상파 시대의 주제는 보통 자연의 아름다운 순간들이지만 그 또한 매 순간에대한 찬사로 나는 이해한다. 빛과 순간이 만들어주는 찰나에대한 찬사. 허구한 날 넘어지며 발목이 박살나고, 한의원에서 걱정을 듣는게 일상인 사람이지만 이 또한 재밌고, 활동적인 순간들에대한 찬사로. 물론 '더 텐'에게 내 슬라이딩은 인간 자아 성찰의 도구일수도 있고, 베를린 분리학파에게는 흙먼지에 뒤덮힌 모습 자체가 더 의미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예술의 한 분야 아니겠습니까? 아주 오랜만에 글을 남기는데 술김에 남기는 글이라 추후 삭제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다빈치는 모나리자를 죽을 때까지 자기 옆에 끼고 돌아다녔다고 한다. 이 글이 나의 모나리자가 되지는 않기를 바라지만(조금이라도 더 대단한 걸 쓸 수 있기를 바란다) 작가의 일생을 쫓아다닌 그림은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력이되어 현재 6조의 가치를 지닌다. 나의 마지막 예술적 코멘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삭제 버튼을 찾는 예술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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