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집에서의 추억
어릴 적 할머니집은 2도 3군에 접해 있었다. 섬진강 건너기 전 화개는 경상남도 하동군이고 할머니집 구례는 전라남도 구례군이고 할머니 집 앞에 있는 계곡의 작은 다리만 건너면 전라남도 광양군이다.(지금은 광양시지만) 할머니 집에서 보면 계곡(어른이 되어 가보니 계곡이 생각보다 작음) 건너 광양이 훤히 보이고 이웃 마을처럼 왕래도 잦았다.
조영남의 ‘화개장터’ 가사처럼 어릴 적 화개장은 5일장으로 하동과 구례사람들이 장을 보는 큰 시골장이었다.
할머니는 외출하실 때 항상 성장을 하셨다. 화개장에 가실 때도 머리에 동백기름을 바르고 참빗으로 곱게 머리를 빗어 쪽을 지신 후 깨끗한 한복으로 곱게 갈아입으시고 판쟁이 아재와 같이 길을 나서신다.
그때만 해도 소설 토지에서처럼 할머니 집에는 집안일을 거들어 주는 일하시는 분이 계셨다. 우리는 판쟁이 아재라고 불렀다.
판쟁이 아재는 가끔 보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비 오는 날 도롱이를 걸치고 해맑게 웃는 모습, 까치밥만 남겨 두고 잘 익은 다홍색 감을 따 주시던 모습, 커다란 나뭇짐을 지게에 매고 들어오던 모습, 큰 밥그릇의 고봉밥을 맛있게 먹던 모습 등등.....
아무튼 우리(언니와 사촌들)는 할머니가 화개장을 가실 때는 쫄랑쫄랑 꼭 따라갔다. 화개장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우리의 목적은 단팥죽이었다. 장터 가판에 옹기종기 쪼그리고 앉아 먹는 단팥죽의 맛은 10리 길을 길어서 따라올 정도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달콤한 단팥죽을 먹는 동안 할머니는 시장도 보시고 지인들과 소식도 교류하시는 등 볼일을 보셨다.
명절에 할머니집 가는 것은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다. 맛있는 먹을 것이 많아서 좋았다.
찐 찹쌀을 절구통에 넣고 작은아버지랑 숙모가 주거니 받거니 절구를 친 다음 쳐낸 찹쌀떡을 마루에 넓게 펼쳐 놓고 반반하게 만든 다음 반듯하게 썰어서 콩고물에 묻혀 주면 너무나 고소하고 말랑말랑 맛있었다.
유과와 강정도 만들 때 옆에서 집어 먹고 김부각, 곶감, 송편(겨울이면 가래떡을 조청에 찍어 먹기도 함), 화개장에서 사 온 울긋불긋한 과자 (옛날 과자라 이름을 모름), 밤, 홍시 등등...
그때는 모든 것이 맛있고 명절이 즐거웠다.
지금은 소고기로 떡국을 끓이지만 어릴 때 할머니집은 닭고기로 떡국을 끓였다.
작은 아버지가 닭의 목을 비틀어 닭을 잡는 광경을 처음 보았을 때 엄청 충격이 컸었다.
닭의 뱃속에는 달걀의 노른자가 2개 들어 있기도 하였다.
설명절에 할머니집 옆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는 아이들의 최애 장소였다. 지금 생각하면 조잡하기 그지없는 장난감들이었다. 과자들도 지금 기준으로는 불량식품이다. 그래도 우리는 열심히 들락거리며 좋아했었다.
겨울에는 얼어 있는 논바닥에서 열심히 스케이트도 탔다. 집집마다 자체 제작한 앉아서 타는 스케이트 (두꺼운 나무판 위에 발을 올리고 발판 아래는 쇠막대기를 붙여서 미끄러지게 하는 것으로 양손으로 막대기를 잡고 밀면서 탄 기억이 남)로 추운 줄도 모르고 열심히 탔다.
내가 살던 여수는 겨울에 거의 눈이 내리지 않았다. 어쩌나 눈이 내려도 쌓인 적이 없고 내리면서 공중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지리산 부근인 할머니집은 겨울에 눈이 펑펑 내릴 때가 많았다. 그러면 우리는 비료 비닐포대를 잡고 눈썰매를 즐겼다. 언덕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다가 뒤집히기도 하여 눈밭에 뒹구는 일이 허다하였다. 아무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어찌나 재미있던지...
연날리기, 쥐불놀이 등 어린 시절 할머니집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즐거운 놀이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지금의 내 나이가 그때 할머니 나이쯤 되려나?
어린 시절 할머니 집에서 누렸던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들이 지금까지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