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할머니 집 (1)

섬진강이 흐르는 구례

by 장미여정

얼마 전부터 박경리 소설 “토지”를 다시 읽고 있는데 젊었을 때는 책의 내용에 집중이 잘 되었는데 지금은 소설의 배경인 하동과 구례가 나올 때마다 어린 시절 할머니 집이 떠올라 생각이 추억이 꼬리를 물고 과거로 나를 데려간다.


어린 시절 여수에 살았던 우리 가족은 명절이나 방학 때 할머니 집을 가려면 하루가 걸렸다.

여수에서 구례까지 가는 완행열차를 타고 구례구역에서 내려 구례읍까지 가는 버스를 탄다. 구례읍에 도착하면 화개까지 가는 버스를 또 타야 한다. 물론 70년대의 낡은 버스들은 바로 오지 않았고 한참을 기다려야 왔다.

나는 정류장에서 버스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나 무료하고 지루하였다. 버스는 언제 오냐고 아버지를 조르기가 일쑤였으나 아버지는 오랜만에 고향에서 만난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시며 즐거워하셨다.

어렸을 때 구례읍에서 화개까지 가는 길은 정말 무서웠다. 비포장도로인데 도로와 섬진강 사이에는 가드레일이 없었다. 오른쪽은 섬진강 물이 금방이라도 넘칠 것처럼 출렁댔다. 좁은 길에 오고 가는 버스가 서로 만나 조심히 비킬 때면 혹시 잘못해서 버스가 강물에 빠지면 어쩌나 하는 방정맞은 생각과 함께 아버지를 꼭 붙잡고 있었다.

지금은 섬진강 댐이 생겨서 강물도 적고 길은 포장도로에 봄이면 아름다운 섬진강 벚꽃길로 유명하다.

우리는 화개에서 내려 섬진강을 건너야 할머니 집을 갈 수 있다. 지금은 남도대교가 있어 차로 금방 가지만 그때는 뱃사공이 긴 장대로 강바닥을 밀면서 강물을 헤쳐 나가는데 배가 곧 강물에 잠길 것 같이 떠 있어서 너무나 무서웠다.


한 번은 큰비가 내린 후였는지 섬진강 강물이 온통 흙탕물로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평상시 배는 타면 직선 코스로 반대쪽에 도착하였는데 그날은 뱃사공과 사람들이 합심하여 긴 장대를 밀었어도 배는 목표 지점을 한참 벗어난 곳까지 떠내려가서 닿았다. 어른들은 늘 있는 일처럼 대하였으나 나는 그 흙탕물이 진짜 무서웠다.


배가 강 건너편에 있을 때는 뱃사공을 큰 소리로 부르고 동백집이라는 주막에서 기다리는데 겨울에는 섬진강 강바람이 어찌나 매서운지 동백집에서 배 타러 내려갈 때의 추위는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섬진강 나룻배를 타고 건넌 후 할머니 집까지는 산골길로 10리를 더 걸어가야 했다. 10리면 약 4km, 이 길은 너무나 멀고 힘들었다.

엄마는 막내 동생을 업고 다른 동생의 손을 잡고 걸으셨다. 아버지는 할머니 댁에 드릴 선물을 양손에 드셨다. 언니와 나는 아버지 옆에 바짝 붙어서 걸었다. 설 명절 등 겨울에는 이미 어두워져 산길 같은 시골길을 걸어가는 것이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이다. 부엉이 소리도 들리고 갑자기 큰 바위가 나타나서 깜짝 놀라기도 하고, 그럴 때면 아버지 옷자락을 꼭 부여잡고 쫄쫄 따라갔었다.

그래도 추석 명절 때 할머니 집 가는 시골길은 이뻤다. 해질 무렵이 되어 걸어가는 시골길은 빨갛게 익은 감들이 길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밤송이도 여기저기 큼지막하게 매달려 있었다.

할머니 집이 있는 마을 가까이 가면 밥 짓는 냄새와 함께 집집마다 피어오르는 연기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도시에서 연탄불만 보다가 나무로 불을 때서 밥을 짓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였다.


할머니 집은 조그만 산골 동네로 6.25도 피해 갔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산골 깊숙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동네로 윤 씨가 많아 대부분이 우리 친척이었다.

할머니 집 사립문을 열고 마당으로 내려가면 왼쪽에 작은 옹달샘이 있고 옆에는 앵두나무가 있었다. 별채는 증조할머니가 계셨고 안채 뒤로는 넓은 대나무 밭이 있었다. 여름에 안방에서 뒷문을 열면 시원한 대나무 숲이 보이고 때때로 다람쥐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비 오는 날 뒷마루에 앉아 대나무 숲 바라보는 것을 나는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겨울에 대나무 숲에서 나는 바람소리는 무서웠다.

할머니 집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계곡이 있었다. 여름에는 계곡에서 헤엄치고 놀다 큰 바위에 누워 몸을 말리다 잠깐 잠들기도 했었다.

초등학교 시절 할머니 집은 전기가 아닌 호롱불을 썼다. 밤에 마루에 있는 요강을 쓰려고 나오면 온 천지가 칠흑같이 어두워 너무나 무서웠다. 또한 비 온 뒤 계곡의 물소리는 천둥같이 크게 들렸다.

할머니 집 변소는 사립문 옆에 있는 돼지우리가 변소이다. 돼지우리 위로 올라가 나무로 얼기설기 걸쳐 놓은 곳에서 사람이 볼일을 본다. 아래를 보면 돼지가 인기척을 느끼고 모여든다. 그야말로 똥돼지다. 나는 화장실 가는 일이 너무나 두렵고 고통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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