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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이공키로미터 Mar 20. 2022

How to age

나이가 제법 묵직해졌다. 아이들의 키는 훌쩍 자랐고, 아내의 머리카락에 가끔 새치가 눈에 띄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 때부턴가 출근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고, 부쩍 저녁잠이 많아졌다.


무엇보다 최근 회사에서 있었던 한 사건을 통해 나는 내가 어느덧 나이를 이렇게나 많이 먹었구나 하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난 5명으로 구성된 팀의 Product Owner다. 팀은 전문성과 개성이 뚜렷한 남녀 멤버들로 구성되어있는데, 나이대도 2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 다양했다. 20대 후반의 한 여자 멤버는 구성원중 가장 전문성이 높고, 의욕도 넘치는 친구인데, 프로젝트가 3개월쯤 지났을 즈음 이 친구와 나 사이에 은근한 갈등이 생겼다.


새로운 서비스 출시가 우리의 팀 목표였는데, 난 이 분야를 접한 지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그 여자 멤버는 이미 몇 번의 유사한 서비스 출시 경험이 있는 상태였다. 시작은 기획부터였다.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멤버들은 정신없이 다양한 경쟁 서비스를 분석하고, 고객 트랜드를 조사했다. 회의 때마다 서로의 목소리가 커지고 회의를 제시간에 끝내지 못할 정도로 치열한 의견이 오갔다.

나 역시 관련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의견을 모으며 회의를 진행했는데, 어느 회의 때부터인가. 그 여자 멤버(그녀의 머리카락 색이 붉은색이어서, 이후 레드로 칭하자)의 발언이 미묘하게 거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의견을 내면 레드가 아주 소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레드는 내가 의견을 내면 노골적으로 반대를 했다. "이런 그 조사는 그런 방식으로 보시면 안 되는데", "에이 PO님 그건 요즘 트랜드와 전혀 맞지 않아요?"

난 당황했다. 나와 레드는 거의 20년의 나이차가 나는데, 어떻게 나한테 저런 말은 태연히 할 수 있지. 옛날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말이야. 내 마음이 이런 상황이니 레드와의 관계는 점점 더 나빠져 갈수 밖에 없었다. 관련하여 화를 누르고 몇 차례 대화를 시도했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지 못했다. 게다가 레드를 비롯한 다른 젊은 친구들의 시선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어느덧 새로운 세대와 소통이나 공감이 어려운 나이에 접어든 것이다. 이제 조직은 내가 배우고 경험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변했구나를 머리와 가슴으로 느꼈다. 평소 젊은 세대와 잘 어울리고, 트랜드에도 제법 민감하게 따라왔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퇴근길, 서점에 들렀다. 전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한 책에 시선이 갔다. "인생학교-How to age".   나이 드는 법을 배워야 할 시점이 마침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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