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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이공키로미터 Aug 15. 2022

칠선 계곡의 여름

이번 글은 여름휴가의 마지막을 지리산 계곡 깊숙한 곳에서 친구와 함께 보내며 썼습니다.


금계 흑돼지

금계 흑돼지는 빛깔이 선홍색이다. 제주도에서 먹었던 흑돼지에 비견할 맛이었다. 긴 연휴가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을 맞아 동네 주민들이 모두 모인 작은 식당은 빈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연기로 자욱한 식당 안은 웃음소리와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끊히질 않았다.  


이 고장의 유명한 음식은 흑돼지와 3년 묵은 김치다. 우연히 뱀사골의 한 상인이 개발한 이 요리는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 이제는 지리산의 대표 메뉴가 되었다. 덕분에 뱀사골 들어서는 입구는 고소한 돼지고기 굽는 연기가 가득하다.


상추에 잘 익은 삼겹살을 얻고, 마늘과 파채를 살짝 올린다. 소주와 맥주를 잘 섞은 소맥은 필수다. 쌈을 입에 넣고 천천히 씹는다. 고소한 육즙과 파채의 상큼함이 입에 가득 차며 돼지에 대한 미안함은 벌써 안녕이다. 어쩌겠냐. 그 돼지가 검은지 붉은 지, 우리는 잡식인걸. 잡식이라 다행이라는 유치한 생각이 잠시 지나간다. 이미 중년도 훨씬 넘은 어떤 커플 손님이 상추쌈을 싸서 입에 넣어주는 모습을 괜히 의심해본다. 부러워서는 아니다. 쌈을 싸주는 행위는 100% 사랑이다. 고기의 맛과는 관계가 없다. 번거로운 행위도 자연스러운 게 사랑 아니더냐(나는 잘 모른다). 



극락전

극락전은 실상사의 가장 구석진 곳에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한 극락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들꽃만이 마당에 가득하고, 건물의 칠은 바래 원래의 색을 찾기 어려웠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왜 이곳이 극락전인지. 


다들 나름의 극락을 꿈꾼다. 같이 극락전을 간 이상완은 술에 취해 극락은 술, 담배, 음악, 모기, 선풍기와 오래된 빨래 냄새의 완벽한 조화라는 개소리를 했다. 내 머릿속에 극락은 하고 싶은 얘기가 글로 술술 써지는 곳, 오래 춤을 춰도 피곤하지 않은 곳 정도가 떠올랐다. 아.. 아니다. 친구와 달을 보며 술잔을 기울이는 지리산 자락의 이 계곡이 혹시 극락이 아닐까. 극락이 천국은 아니다. 불교는 발을 땅에 딛고 있다. 왕복 1차선 계곡길 한구석에 낡은 블루투스 스피커의 신호를 간신히 잡아서 비록 구글이 추천해주는 신나는 음악들을 들으며 술기운에 살짝 용기를 내어 길 가운데로 슬리퍼를 벗어던지고 나아가 잭슨 형의 리듬에 몸을 맡기는 순간이 어쩌면 극락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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