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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이공키로미터 Aug 29. 2022

옛날 영화를 보다 - 베니싱 포인트

서울아트시네마가 서울극장에서 정동으로 옮기고 나서 처음으로 찾아가 보았다. 터전을 잡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도는 모습이 대중의 환영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예술가의 처지와 닮은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꾸준히 좋은 영화를 발굴하고,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이들의 노력이 무척이나 소중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이번에 본 영화는 '71년작 베니싱 포인트(감독 : 리처드 C, 사라피안)이다. 언젠가 영화잡지에서인가 대학 때 영화동아리에서인가 이 영화가 대단한 컬트영화라는 것을 들어본 기억이 있었는데, 마침 내가 방문했을 때 상영 중이길래 보게 되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쉼 없이 질주한다. 인간의 기본 욕구를 모두 잊은 채 혹은 외면한 채 주인공은 각성제와 한 모금의 물에 의지해 도로와 사막을 거침없이 달린다. 주인공의 직업을 지금으로 치면 택배기사다. 도시에서 한껏 멋을 부리고, 튜닝한 오토바이로 매연으로 가득 찬 도로를 누비는 한국 택배기사의 미국 버전으로 보면 적절할 듯싶다. 다른 점은 주인공은 닷지 챌린져란 V8엔진의 고성능 차를 몰고, 배달을 위해 흙바람이 날리는 사막과 끝없이 뻗은 고속도로를 달려야 한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콜로라도 덴버에서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까지 2,000km를 쉼 없이 달린다. 그의 질주는 이유가 없다. 그리고, 경찰은 이유 없는 그 질주를 두려워한다. 뭔지 모르지만 그 질주가 그들의 사회에 반하고, 무언가 균열을 만들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경찰들은 주인공을 추격하고, 궁지에 몬다. 하지만, 대중들은 이 질주의 의미를 어렴풋이 느끼고, 그를 지지한다. 일군의 사람들은 그를 돕고, 일부는 그를 해하려 한다.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 지혜로운 노인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벌거벗고 오토바이를 타는 여인에게 유혹을 받기도 한다. 게이 커플에게는 강도를 당할뻔하고, 눈먼 라디오 디제이는 음악으로 그를 응원한다. 


실감 나는 도로 질주 신을 반복적으로 보다 보니 어느새 내가 닷지 챌린져 안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묵직한 엔진 소리와 타는 듯한 더위, 꽉 잡은 핸들의 감촉. 그렇게 주인공 코왈스키와 나는 2,000km를 힘들게 같이 달린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지점. 경찰의 바리케이드는 도무지 빠져나갈 수 없게 촘촘하다. 그 주위에는 무언가 사건을 기대하는 기자들과 무료한 대중들이 모여있다. 그리고 코왈스키는 자신의 방식대로 배달을 마무리한다. 


한번 시작한 인생은 결국 끝이 있고, 끝에 다다르기 전에 멈출 수 없다. 그리고 이 여정의 의미는 각자가 찾아야 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매드맥스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외로운 드라이버, 사막을 달리는 8기통 엔진의 차, 부인의 갑작스러운 죽음. 매드맥스 1편이 79년에 나왔으니 아마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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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stop" 싸인이 많이 나온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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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종교적인 상징이 많이 나온다. 광야에서 노래하는 목사라든가, 찬송가, 뱀, 도로에 만들어진 십자가 모양의 차량 궤적. 감독의 의도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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