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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이공키로미터 Sep 25. 2022

일본 출장을 가다.


출장 간 선배와의 통화와 지난번 글 “해도 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에서 영감을 받아 쓴 글입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기존 항공 노선이 줄줄이 취소되어 집인 대구에서 출장지인 오키나와를 가는 길은 멀었다.  06시 20분 집을 출발 동대구역, 07시 KTX 서울역 10시 30분 도쿄행 비행기 15시 30분 오키나와행 비행기 19시 호텔 도착..  대충 짐만 던져놓고 저녁을 먹으러 나올 때쯤엔 녹초가 되었다.


 오키나와는 해안선이 길고 옅은 해변 완충지대로 인해 남녀노소 모두 쉽게 바다에서 놀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음식은 일본 본토와 태평양 열대의 것이 묘하게 섞여 있었고 현지인들은 뭔가 느슨했다.  태풍이 자주여서인지 최소한의 기능만 남겨놓은 건물들은 낮고 띄엄띄엄했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옷가지를 사느라 근처 유니클로에 들렸다. 제법 큰 규모의 매장은 돌아보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이런저런 옷들을 구경하는데, 매장에서 들려주는 음악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청량한 느낌의 락음악에서 흥겨운 브라질리안 리듬의 곡까지 한곡 한곡이 너무나 훌륭했다. 다음 곡으로 어떤 음악이 나올까 기다리면서 난 유니클로 남성복 코너 한구석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숙소로 돌아와 난 구글에 유니클로 매장 음악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마침 유니클로 홈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은 보도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유니클로 매장의 음악은 유니클로의 밝고 세련된 이미지를 반영할 수 있는 뮤지션들을 발굴하고, 그들에게 의뢰해서 자체 제작합니다. 이 앨범들은 ‘The sound for U’란 이름으로 매년 발매되고 있고, 올해는 10주년 앨범이 나옵니다.” 


호텔방에서 유니클로 음악 따위를 뒤지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낮에 통화했던 후배의 오래간만에 혼자인 소중한 시간을 너무 소홀히 보내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갑자기 생각났다. 그래 한번 나가보자. 난 시간을 들여 샤워를 하고, 호텔을 나섰다. 


오키나와는 섬 전체가 한적한데, 아메리칸 빌리지란 곳이 그나마 번화하다고 해서 택시를 타고 그곳을 향했다. 빌리지 근처에 들어서자 커다란 대관람차가 여행객들에게 “여기로 오세요”라고 손짓을 하는 듯했다. 특색 있는 상점과 식당, 카페가 즐비했고, 빌리지 초입에 사람들로 붐비는 회전초밥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한국과는 다르게 다양한 생선을 사용한 초밥이 있었고, 맛도 괜찮았다. 식사를 하고, 빌리지 이곳저곳을 산책하던 중 어디선가 익숙한 음악이 들려왔다. 흥겨운 라틴음악이었다. 난 자연스럽게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향했다. 지하에 자리 잡은 “하바나”라는 작은 술집이었다. 난 출입문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 문을 열었다.


한쪽 벽면에서는 남미 해안가 어딘가를 보여주고 있는 뮤직비디오가 흐르고, 술집 중앙에서 몇몇의 커플이 살사를 추고 있었다. 흥겨운 리듬의 살사 음악을 들으며, 행복한 표정으로 춤을 추는 커플들을 보니 20여 년 전 배운 살사를 한번 춰볼까란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춤을 안 춘지 꽤 오래됐는데, 과연 몸이 기억할까?” 음악이 몇 차례 바뀔 동안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 한 일본인 여자에게 춤을 청했다. 몸은 몇 개의 루틴과 텐션을 용케 기억하고 있었고, 날 살짝 경계하는 눈빛의 파트너와 함께 음악에 몸을 맡겼다. 

음악이 끝났다. 파트너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난 간단히 내 소개를 하고, 맥주를 권했다. 그녀는 이 섬에서 유일한 살사 파티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냐고 물었다. 난 우연히 음악이 이끄는 대로 찾아왔다고 했고, 그녀는 알듯 말듯한 표정을 지었다. 내 춤이 요즘 사람들이 추는 춤 같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난 차마 춤을 배운 지 20년이 지났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미소로만 이렇게 대답했다.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르면 올드한 것이 아주 새로운 것이 되기도 한답니다.”

예의 바르지만 좀처럼 감정을 알수 없는 그녀와 난 그렇게 신나게, 부드럽게, 혹은 감미롭게 춤과 음악을 즐기며 밤을 보냈다. 출장지에서의 첫 하루가 이렇게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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