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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이공키로미터 Oct 01. 2022

옛날 영화를 보다 - 드라이브 마이 카


개봉 : 2021년 12월 23일
감독 : 하마구치 류스케
출연 : 니시지마 히데토시, 미우라 토코, 오카다 마사키, 키리시마 레이카


소설 원작의 영화가 성공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텍스트로 이루어진 제한 없는 상상력을 제공하지만 반대로 영화는 정제되고, 제한된 이미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독자가 글을 읽고 만든 각각의 그 세계가 감독이 구축한 세계와 같을 수 없기에 관객은 실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본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세계는 영화의 원작,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으며 상상한 세계와 아주 유사했다. 오히려 영화는 내가 만든 세계보다 더 생생하고 적절했다. 감독은 소설의 여러 단편을 잘 직조하여 스크린 안에 아주 자연스럽게 녹여 넣었다.


먼저, 제목에도 언급된 “마이 카”에 대해 말해보자. 소설 속에서는 노란색 사브로 묘사된 차가 영화에서는 빨간색 사브로 나온다. 영화 속에서 회색 도심을 쉴 새 없이 헤매는 차는 빨간색이 더 적절해 보였다. 차는 사건 속에 깊숙이 들어가게 해 주고, 진실에 다가가게 해 주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 마치 몸속에서 영양분과 노폐물을 나르는 붉은 혈액처럼 말이다. 주인공은 부인의 외도와 죽음을 목도하고, 더 이상 차를 운전할 수 없게 된다. 핏줄에 무언가 이상이 생겨 혈액이 흐르지 않게 된 것처럼 말이다. 그때 과묵하고, 소설의 표현에 따르면 “좀 못 생겼을 수도 있는” 젊은 여자 드라이버가 나타난다. 


그녀는 조용히 주인공을 나른다. 그리고, 치유한다.

영화 속 주인공은 연극배우이자 연출자이다. 그의 연극은 독특하게도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나와 극을 이끈다. 일본인, 한국인, 중국인은 연극에서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한다. 심지어 말을 하지 못하는 배우가 나와 수화로 극에 참여한다. 동일한 언어로 말하면 소통이 잘 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소통의 핵심은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하는 간절함이고, 주인공 연출자는 배우들에게 이를 강조한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은 소통에 서툴다. 아내와 몸을 섞고, 한 공간에서 긴 시간을 같이 보냈지만, 아내의 외도를 눈치채지 못했고, 외도의 이유조차 모른다. 영화 속 주인공 부부와 대비되는 한국인 부부가 나온다. 아내는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졌지만 둘은 누구보다 깊이 소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의 가장 놀라운 점은 여러 예술 장르를 아주 적절하게 버무려 효과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영화는 하루키의 단편 소설들에서 영감을 받았고, 이를 영상과 음악으로 재구성한다. 극 중 인물들은 영화 속에서 연극을 공연하고, 영화 속 배우는 영화배우이자 연극배우이다. 연극 속 이야기는 영화 속으로 이어지고, 체호프의 소설은 두 장르를 오간다. 일본 영화가 망해가는 줄 알았더니 "아직은 아니야"라고 온몸으로 증명하는 영화인 것 같다. 감독의 다음 영화가 몹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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