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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이공키로미터 Oct 10. 2022

부산국제영화제로 출장을 가다.

3년 만에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 출장을 다녀왔다. 회사에서 영상 서비스 관련된 업무를 하다 보니, 이쪽 업계 사람들도 만나고, 영화 트렌드도 살필 겸 동료들과 부산으로 향했다. 기차 안에서 어떤 영화를 볼지 이리저리 살피는데 나와는 달리 영화제에 여러 번 참가했던 동료가 말했다. 


“책임님. 이틀 동안 영화 보실 시간 없으실 거예요.”


숙소를 해운대에 잡고, 업체와 짧은 미팅을 한 차례 한 뒤, 김밥 한 줄을 겨우 먹고, 센텀시티 영화관으로 이동해 첫 번째 영화를 보았다. “코르샤쥬"라는 영화였다. 사회가 기대하는 여성의 역할에 대해 아름다운 영상과 그에 아주 잘 어울리는 음악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는데, 특히 욕조에서 숨참는 연습을 하는 첫 장면과 주인공이 바다로 뛰어드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이 두 장면에 모두 표현되어 있었고, 특히 마지막 장면은 감독이 이 장면을 가장 먼저 떠올리고, 역으로 앞의 이야기들을 만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저녁에 영화제 메인 스폰서에서 주관하는 밤 행사가 있었지만, 욕심 내고, 영화 한 편을 더 보았다. “레일라의 형제들"이란 이란 영화다. 능력 있고, 똑똑한 여자 레일라가 네 명의 오빠와 보수적인 부모님을 돌보는 내용인데, 전통이라는 괴물과 붕괴되고 있는 이란 경제의 현재 모습을 아주 잘 반영하고 있었다. 영화가 끝난 이후 레일라의 삶이 또 얼마나 더 힘들어질까 걱정이 많이 되었다.

레드카펫 행사는 제가 오기 하루 전에 이미 끝났네요. 아쉬워라.

서둘러 숙소로 와 곰장어에 소주 한잔을 곁들여 저녁을 먹었다.(꼼장어가 아니라 곰장어가 바른 표현이라고 합니다.) 바닷가에서 싱싱한 곰장어를 안주 삼아 소주 몇 병은 거뜬히 먹을 것 같았으나 행사에 가야 해서 서둘러 식사를 마쳤다. 밤 행사는 업계 관계자 및 감독, 배우가 모두 모이는 큰 행사였다. 하지만, 장소가 생각보다 협소했고, 이런 문화에 익숙지 않은 나는 맥주만 축네다가 행사장을 나왔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행사장에서 만난 옆 부서원과 합류하여 파도소리를 안주삼아 술 한잔을 더했다. 모두 이번 영화제 특별기획전의 주인공 양조위 팬이어서 양조위가 출연한 영화 얘기로 술자리는 쉽게 끝이 나지 않았다. 아, 내일 아침 예매한 영화를 과연 볼 수 있을까.

선배, 양조위 그린 거 맞지?


초인적인 의지로 일어난 나는 숙취로 고생하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홀로 영화관으로 향했다. 이번엔 이란 옆 나라 이라크의 “공중정원"이란 영화다. 어제 본 이란 영화를 보며 이란의 현재 모습이 암담하다고 생각했는데, 영화 속 이라크의 현실은 더 처참했다. 폐허가 된 바그다드에서 부모도 없이 미군이 버린 쓰레기로 겨우 버티는 아이들의 삶은 고단하고, 희망이 없어 보인다.


아슬아슬하게 점심을 먹고, 오후 미팅 참석 후 서울로 돌아왔다. 기차 안에서 이틀 동안 뭘 했는지 정리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다만, 코르샤쥬를 입고 위태롭게 말을 타던 엘리자베스 황후와 가게를 차리기 위해 멍청한 오빠들을 이끌고 테헤란 쇼핑몰을 향하던 레일라, 파리가 날리는 쓰레기장에서 형과 식사를 하던 착한 아사드의 모습이 머리에 남았고, 구수한 돼지국밥의 진한 국물과 지글지글 익어가던 곰장어의 질감이 입안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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