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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이공키로미터 Nov 26. 2022

너 패션 좀 아는구나?

이번 글은 연말까지 52편의 글 등록을 목표로 선배가 그림에다 글까지 하드 캐리함 


집에서 버스로 한정거장 거리에 있던 동시 상영 영화관, 덕수궁 석조전, 정독도서관 자료실.. 좋아했던 곳들은 많았지만 사춘기 가장 애정 하던 곳은 역시 쇼핑몰이었다. 논노 잡지에 80년대 하라주쿠인들을 보며 일찌감치 패션에 눈을 뜬 (?) 나는 방학이면 복장학원에 등록해 복장 패턴을 배우고, 발을 구르며 구형 재봉틀을 익혔고, 답답해지면 훌쩍 동대문 원단시장 남대문 도깨비시장 명동 이태원 청담동에 가 보세 명품을 가리지 않고 진열된 옷들을 좌우 1.5 시력으로 포식했다. 아둔한 소년에게 늘씬하고 반질반질한 신상은 영영 빛을 잃지 않을 영물이었고 닥치는 대로 사고 싶은 욕망은 어처구니없는 가격표 때문인지 되려 더 커지곤 했다. 하지만 그때도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다. 여자 형제 사이에서 자란 친구들의 디자인엔 내가 알 수 없는 디테일이 배어있었고 맵시 없는 가봉에 끙끙대는 동안 친구들은 마네킹과도 친구가 되었다. 병신. 노력은 배신자가 될 수도 있어. 

얼마가 지나 삶에 이런저런 이벤트가 참견하며 자연스레 ‘한국의 갈리아노, 동양의 아르마니’가 되고 자는 길에선 멀어지고, 쇼핑몰에서 반나절을 헤매던 열정도 사그라들었다. 옷이라면 거의 철저히 기능과 가성비만 따지는 지금 와서 돌아보면 옷과 함께한 시간들은 약간의 즐거움과 대체로는 아까움(시간)으로 남아있다. 좀 더 똘똘했다면, 철 좀 들었다면 내 시행착오는 좀 더 짧지 않았을까?

(선배, 고명한 학자들에 의하면 앞으로 기대수명이 120세가 될지 모른대. 동양의 아르마니, 아직 늦지않았다구!)  

미야자키 하야오의 ‘귀를 기울이면’에서 꿈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 시즈크에게 하야오는 “우선 귀를 잘 기울여봐” 귀띔한다. “네 꿈은 어떤 꿈이니? 너에게 어떤 것이고 공동체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니? 네 꿈은 뭘 바라보고 있는 거니?  무엇보다 ‘왜’ 그 꿈을 꾸는 거니?” 하야오가 이미 95년도에 물었음에도 난 귀 기울이지 않았거나 알아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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