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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이공키로미터 Dec 17. 2022

대로에서 우회전하면

시원하게 뚫린 신천대로를 따라 대구에서 청도 방향으로 10분 정도, 2차선으로 차를 옮긴다. 조금 더 가면 오른편 귀퉁이에 커다란 바위가 하나 서있는데 30미터 앞에서 갓길로 한 차선 더 옮기고 속도를 줄이고 바위를 바라보며 우회전, 산등성이 따라 새로 시원히 난 가창로 길을 쭉 오르면 금방 집이다.


사회생활은 대로까지만, right turn을 하고 눈앞이 시골길로 바뀌면 그날의 개인사는 시작된다. 바위가 집어주는 포인트부터 술 마시고 끼니 준비하고 노래 듣고 조깅하고 어슬렁거린다. 주 5일 오후 6시, 차 방향을 우측으로 90도 틀면 어김없이 눈이 맑아지고 느긋해지고 1%쯤 소풍 온 아이로 돌아간다. 우회전은 위대하다.  

 

도시에서 한나절 직장생활, 시골에서 여가생활 조합은 꽤나 매력적인데 부작용이라면 가끔씩 서울에 올라갈때 밤이 지난 유흥가가 빼곡한 빌라촌을 지날때 절로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이다. 추구하는 것은 일과 여가의 삶에 경계가 없는 경지였으나 되려 경계가 갈수록 뚜렷해지니. 세월이 가장 진한 주름을 만드는 곳은 목덜미보다 사고인가. 팔다리, 허리, 등, 어깨가 삐걱대는데 그중 제일은 생각이다.  


사고는 개인의 일생이 담긴 결과물. 누구도 누구를 바꿀 수 없으니 사고란 참 완고하다. 경상도와 전라도는 근본이 다르다고 믿어버리면 빨간색과 파란색은 서로 섞이지 않는다고 결정 내리면 머릿속 철책은 만들어지고, 웬만해선 입소도 만기출소도 허락하지 않는다. 당신은 나를 설득할 수 없다.  

왜 나를 죽이려들던 사람들을 봐줄까, 어떻게 그들을 사면할 수 있을까, 뭐 좀 받았나 궁금했더랬다. 돌이켜보면 내 생각은 너무 짧았을까. 누구를 엄벌해 통쾌한 대신 배척점에 있는 이들의 원한을 키우느니 차라리 묻자, 묻고 같이 가자. 어쨌든 형제고 부모 자식이다. 개인의 믿음으로 갈라 치기엔 나라가 너무 작고 낭비가 너무 크다. 반면 미워하고 증오하고 부추기면 분명한 이득을 챙길 수도 있다. 슈퍼챗이든 감투이든 공천이든 유명세이든.

가속도가 제법 붙을 때쯤 고맙게도 이정표가 나오고, 바위가 보이면 우회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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