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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이공키로미터 Dec 11. 2022

소설 파친코를 읽고

오래간만에 흡입력 있는 책을 읽었다.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는 애플tv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진 바로 그 책인데, 이번에 독서모임 회원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책 두 권의 분량이지만, 읽는 재미가 상당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책의 배경은 일제 강점기고, 내용은 주인공 선자 가족의 4대에 걸친 험난한 가족사이다. 문체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작가가 30년이란 긴 기간 동안 구상한 서사는 빈틈이 없고, 풍성하며, 등장인물은 생생하고, 매력적이다.


소설에서 인상적인 것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었다. 극 중 남성들은 모두 무언가 하나씩 큰 약점을 가지고 있다. 선자의 아버지 훈이는 장애인이고, 선자의 첫사랑 고한수는 조직폭력배이다. 선자의 남편은 병약하고, 선자의 아주버님은 폭격으로 큰 화상을 입고 살아간다. 반면, 여성 캐릭터들은 몸과 정신이 건강하고,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선자는 첫사랑에게 버림받고, 고향을 떠나야 했고, 남편과 아들을 허망하게 잃지만, 가족을 지키며 꿋꿋이 삶을 이어간다. 선자의 어머니 양진과 선자의 형님 경혜 또한, 온갖 시련을 겪지만 의연하고, 강인하다. 다음은 선자 아버지의 죽음 뒤에 나오는 표현이다. “양진과 선자는 장례를 치르면서 슬픔을 가누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젊은 과부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평소처럼 일을 시작했다.” 그녀들의 고단한 인생은 슬픔을 누릴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한편, 소설 속 모든 인물은 날카로운 경계선 위에서 살아간다. 주인공 가족은 일본 오사카에서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체 살아가야 하고, 선자와 고한수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 사이에서 번민한다. 친척을 사랑하는 인물이나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등 소설 속 모든 인물은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삶을 살아간다. 이런 세팅은 사건과 인물에 몰입하게 하는 훌륭한 장치로 동작하면서, 이야기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소설 속 최고의 빌런, 고한수도 몹시 흥미로운 인물이다. 선자와 그의 아들 노아를 위해 평생을 뒤에서 돌봐주는 순정파이지만, 선자에 대한 애정 때문에 가정을 버리지는 않는다. 위기마다 선자와 아들 노아 앞에 짠하고 나타나 절대적인 힘과 영향력을 행사하고 홀연히 사라지는 고한수의 이미지는 마치 인간을 시험하는 악마를 연상시킨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배려로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듯 하지만 노아의 사례를 보면 그것을 받는 사람들을 결국에는 파멸시킨다.


끝으로 제목 파친코의 의미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모자수는 인생이 파친코 게임과 같다고 믿었다. 다이얼을 돌려서 조정할 수 있지만,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로 생긴 불확실성 또한 기대한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인생은 정해진 운명에 따라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노력한다면 개인의 의지로 조금은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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