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집구석에 틀어박혀 오들오들 떨며 보내던 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봄이 찾아왔다. 학교 건물 앞에는 이때즈음마다 선생님들이 정성스레 주는 물을 먹고 자라는 꽃들이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아침잠을 이겨내고 학교에 등교하는 게 적응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어느 오전에는, 수업에 필요한 책을 정리하는 대신 손가락보다 작은 이파리가 뾰옹 튀어나온 화분을 하나씩 손에 들었고, 친구들과 화단 이곳저곳에 그것을 냅다 꽂아내었다.
선생님들은 매일 아침마다 돌아가며 허리를 굽혀 물을 주었고, 이파리는 눈에 거의 띄지 않을 정도로 아주 조금씩 위로, 그리고 앞옆으로 자라났다. 그리고 그 사이에 못난 이파리들도 공기 중을 헤치고 제 모습을 뽐내며 길고 무성하게 자라났다.
선생님은 그것의 이름을 잡초라고 알려주셨다. 곧 나무가 될 이파리들 사이에 못난 모양으로 쭉쭉 피어난 잡초는 선생님의 이마에 땀방울을 흘리게 만들거나 허리가 꺾이는 고통을 느끼게 만들었다. 반나절 동안 꼬박 뽑아놓아도 다음 날 다시 머리를 빼꼼 내밀었고, 돌아가며 화단을 관리하던 선생님들의 입에서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말과 함께 앓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런 우리들의 마음도 모르고, 잡초는 흩날리는 봄바람을 만끽하듯 못난 잎을 살랑거리고 있었다. 교실 창으로 훤히 보이는 이파리를 괜히 게슴츠레 뜬 눈으로 흘겨보았다. 식물에게 나쁜 말을 건네면 그 뿌리가 썩어 잘 자라지 않고, 좋은 말을 건네면 아주 싱싱하게 잘 자란다는 어느 과학시간 실험을 기억해 낸 뒤부터는 턱을 괸 채 화단을 노려보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선생님들 괴롭히기나 하고, 우리가 열심히 심은 나무도 못 자라게 하고. 넌 정말 쓸모없는 식물이야.'
따뜻한 봄기운, 창 아래 햇살을 맞으며 까무룩 잠이 들곤 했다. 화단을 잘 길러보려 애쓰던 선생님들의 손은 더 이상 잡초를 뽑지 않았고, 나무가 되었어야 할 이파리는 온전히 먹어야 할 양분을 빼앗겨 시들시들해지는가 싶더니 한 줌도 채 되지 않는 가루가 되었다. 잡초는 이때다, 옳다구나, 하고 화단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무성히 자라났다. 화단에는 더 이상 꽃도, 나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봄이 지나갔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겨울, 집 안에 있어도 안에 있는 것 같지 않고, 옷을 아무리 껴 입어도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던 나날 동안, 뜨거운 여름을 기다렸다. 여름이 되면 몸에 걸친 모든 천떼기를 벗어버리면 더워 죽는 일은 없지 않을까, 라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온몸을 지지는 듯한 열기와 사그라들지 않는 햇빛, 손등과 팔, 옷이었던 천조각으로 닦고 닦아내도 마르지 않는 땀을 직접 마주하니 그런 생각을 했던 스스로가 바보 같아졌다. 겨울에 얼어 죽든 여름 더위에 녹초가 되어 쓰러져 죽든, 그만큼 비참한 죽음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초만이라도 더위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마루 바닥에 벌러덩 누웠다. 달칵, 하고 듣고 싶지 않았던 망가질 대로 망가진 쇳문 소리와 둔탁한 발소리가 들렸다. 노름판에서 겨우 따 온 것이 분명한 돈으로 가장 필요한 물 대신 술을 사 들고 들어온 아버지의 모습이 거꾸로 매달린 박쥐처럼 보였다.
"이 년, 더워 죽겠는데 집 한가운데에서 뭐 하냐?"
박쥐가 날갯짓하듯 아버지의 발이 배에 채였다. 숨 쉴 틈 없이 느껴지는 고통에, 살아남기 위한 발악으로 나는 또 구석 저 끄트머리에 온몸을 구겨 넣었다. 배로부터 퍼지는 아픔과 더위로 눅눅해진 벽지의 열기가 온몸을 지배했다. 또다시 둔탁한 발소리가 이 구석으로 들어왔다.
"너만 덥냐? 너만 더워? 이 아버지는 밖에서 고생고생하는데, 넌 아주 살 판 났지?"
양팔로 머리를 감싼 건 정말 본능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미처 구석으로 피신하지 못한 등판과 양팔에 아버지의 발길질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에잇! 쓸모없는 년!"
아버지의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그 말에, 학교 창으로 내다보던 무성한 잡초를 떠올렸다. 선생님의 우악스러운 손길에도, 부정적인 말들에도 아랑곳 않고 제 못난 모습을 한껏 뽐내며 화단을 장악해 버린 잡초. 질긴 생명력을 가진, 쓸모없는 잡초. 지금 당신에게 채이고 있는 이 생명도 아버지에게, 이곳에 아무런 쓸모없는 생명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아버지의 발길질에 덜컹거리는 온몸, 땀으로 찍찍해진 온몸을 한 이 생명은 생각했다. 비록 쓸모없을지라도 잡초처럼 질긴 생명력 하나로, 모든 공격으로부터 악착같이 살아남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