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는 항상 우중충한 구름 아래로 비가 내렸다. 화장실의 센서등을 일부러 꺼두고 숨어있는 날이면,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기어코 가장 구석 칸에 몸을 숨긴 나를 찾아내었고 곧 하늘에서 구정물이 쏟아져 내렸다. 보건실의 선생님의 귀찮아하는 표정 앞에서 손을 싹싹 빌어 겨우 침대 한 자리를 차지한 날이면 얼마 되지 않아 커튼이 촥 열리고 들이닥친 손길이 내 뺨과 머리카락, 교복 안으로 감춰진 멍을 툭툭 건드렸다.
담임 선생님에게 사정을 이야기해 본 적도 없지 않았다. 징계랍시고 수업 시간 내내 운동장과 화장실 청소를 하며 내게 쏘아지는 시선은 온몸을 더욱 욱신거리게 만들었고, 징계가 끝난 후 냉동고처럼 차가워진 교실 안 분위기는 비난이 담긴 모두의 눈초리를 받아내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오늘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건 결코 필연도, 계획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체육시간이 다 되었음에도 강당으로 오시지 않는 체육 선생님을 한참 기다리다 자기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는 내 모습이 싫어서였다. 모든 선생님이 수업을 들어간 뒤인 교무실 안에는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다. 체육 선생님의 자리도 텅 비어있었다. 자리를 스윽 둘러보고 나오려다 발견한 건, 책상 칸막이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옥상 열쇠였다.
덥석 열쇠를 집어 들고 강당이 아닌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한 칸 한 칸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와 초조함에 쿵쾅쿵쾅 뛰는 심장소리가 겹쳐 들렸다. 혹여나 수업 중인 교실 안으로 소리가 새어나갈까 발끝에 힘을 꽉 주었다. 발에 쥐가 나도, 심장 소리가 새어나갈까 움켜쥔 가슴이 아파도, 넘어질까 위태로운 몸짓에도 멈추지 않고 계단 위를 오르고 또 올랐다. 그리고 드디어 옥상 문 앞에 다다랐다.
기름칠을 하지 않은 채 방치된 쇳문은 기분 나쁜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쇳문과 어울리지 않는 초여름의 시원 상큼한 바람이 문틈새로 흘러들어왔다. 아무도 발걸음 하지 않아 어두운 출입구에서 벗어나 밝은 햇살과 맑은 공기가 머무는 옥상으로, 드디어 발을 내디뎠다.
오랜만에 앞뒤옆으로 수두룩히 꽂히는 시선에서 벗어나 위를 올려다보았다. 3m 남짓 높이에 세 칸에 하나씩 금이 가 있는 낡은 천장이 아닌, 끝이 없어 아득함이 느껴지는, 드문드문 하이얀 구름이 둥둥 떠다디는 파란 하늘이었다. 하늘이 원래 이렇게 파랬던가. 그건 정말 어색하리만큼 잡티 없이 맑은 색이었다. 내 몸속에 가득 찬 우중충함은 그것을 거부하는지, 알레르기처럼 재채기가 나왔다. 파랑으로 가득했던 눈길을 거두고 차갑고 어두 칙칙한 옥상 바닥과 저 아래 먼지바람이 부는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그래. 내게 맑은 파랑 따위는 어울리지 않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강당 쪽 건물에서 꺄르르 웃는 소리가 작고 희미하게 퍼져 나왔다. 돌아가자. 어두운 출입구 쪽으로 돌아섰다. 그때 문득 떠올렸다. 저곳으로 돌아가봤자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을텐데, 옥상의 이 공기를 등지고 돌아가야 할 이유가 뭐지?
아무리 고민해도 그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카락에는 두 번 세 번을 감아도 빠지지 않는 구정물의 비린내가 나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고, 멍은 사라질 때쯤 또 다시 생겨나 욱씬거리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책상 위 낙서는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졌지만 뇌리에 박힌 상처들을 지워지지 않았다.
죽는 게 몸도 마음도 편하겠다, 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더 이상 버텨 낼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 누구의 얼굴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까 전 화장실 거울 속에 비춰 본, 우울과 슬픔 그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감정을 내비치는 어두운 내 표정 외에는. 천천히 뒤를 돌아 옥상의 끝자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원산뜻한 바람이 이쪽으로 불어왔다. 더 이상 비린내가 내 콧속으로 스며들지 않았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옥상 끄트머리 턱을 밟고 올라섰다. 강당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렸고, 하늘은 여전히 티없이 맑았다. 손을 쭉 뻗어 그 맑음을 쥐어보려 했다. 하지만 손에는 그 어떤 것도 잡히지 않았다. 조금만 더 뻗으면 닿을까, 힘을 주어 팔과 온몸을 높이 뻗어내었다. 어느새 나는 아래로 그리고 아래로, 먼지바람이 부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마지막으로 마주한 티없이 맑은 하늘이 나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