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의 색깔

by 다운

너는 남색을 아주 좋아했다. 이유를 물어보았을 때, 너는 '그냥. 차분하잖아.'라고만 대답했다. 너의 옷장에는 남색 니트, 남색 재킷, 남색 티셔츠가 줄줄이 걸려있었고, 그에 어울리는 검은색 슬랙스가 옷장 아랫목에 잔뜩 개켜져 있었다. 남색 니트를 냅다 꺼내어 얼굴을 파묻었다. 너의 향기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너의 색은 옷장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었다. 매일 밤 네가 자는 침대의 이불과 시트, 네가 휴식을 취할 때마다 앉아있을 소파, 네가 밥을 해 먹을 때마다 머물러 있을 부엌, 맛 좋은 음식들을 담아내는 그릇 하나하나까지. 모든 곳에 너의 눈길과 손길이 닿아있듯, 너의 색이 머물러 있었다.


차분하고 단정한 머리 스타일, 네 살 연상 특유의 어른스러움이 느껴지는 네가 좋았다. 그래서 네가 좋아하는 색깔 또한 좋았다. 나도 너를 따라 남색 셔츠를 사고, 남색이 포인트로 달린 가방이나 케이스를 하며 너와 조금이라도 닮아졌으면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너를 닮지 못했나 보다. 치기 어린 마음에 일을 하는 너의 휴대폰을 계속해서 괴롭히고, 너의 취미 생활을 이해하지 못한 채 너와 달라붙어 있으려 한 나에게, 너는 꽤나 질린 듯 보였다. 어느새 바깥보다 안이 편해졌고, 그렇게 하루, 이틀, 한 달, 일 년이 넘도록 너의 집 안에만 박혀 있다가 돌아가기 일쑤였고, 나는 너의 색과 향기가 푹 담긴 침대에서, 너는 소파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었다. 같은 색이 스며들어있는 한 공간에 함께 있었지만, 함께 있지 못했다.


어느 날, 너는 권태기가 온 것 같다며 나에게 이별을 이야기했다. 강아지를 별로 보내어 좋지 않은 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조용히 고독한 시간을 견디고 있을 때였다. 미안하다고 빌어도 보고, 버리지 말아 달라 사정도 해보고, 눈물도 흘려보고, 타일러도 보았지만, 이미 너는 나를 마음 밖으로 던져버린 후였다.


공허한 바깥에는 무채색만이 남았다. 나의 집으로 돌아와 옷장을 덜컥 열었다. 아무 향기도 나지 않는 장 속에 너의 색이 곳곳에 물들어 있었다. 너를 따라 산 남색 셔츠, 남색 니트, 남색 액세서리가 내 시선 속으로 야금야금 들어왔다. 눈물로 시야가 뿌예져도 너의 색은 고스란히 시선에 남았다. 셔츠와 니트, 그리고 액세서리를 열심히 꺼내 들어 남색 종량제 봉투에 쑤셔 넣었다. 더 이상 그 색은 너의 색인지, 쓰레기봉투의 색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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