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보라색을 아주 좋아한다. 이유를 물어보면 너는 '오묘해서 예쁘잖아.' 라고 대답해 주었다. 자신을 가꾸는 데는 관심이 없어도, 보라색 꽃이 보이면 다가가 향기를 맡아보고 보라색 시트가 덮인 소파나 침대가 보이면 우다다 달려가 앉거나 누워보기도 하며 그 색깔을 온전히 느끼려 했다.
너의 색은 너의 손이 닿는 곳곳에 조심스레 물들어 있었다. 항상 쥐고 다니는 휴대폰의 케이스, 네가 즐겨하는 게임 캐릭터의 눈동자와 머리카락, 책상 위 피규어, 매일 밤 네가 안고 자는 바디필로우 인형, 자주 입던 티셔츠 속 포인트 무늬. 너를 닮아 작지만 세심한 곳에 보라색이 알록달록히 박혀 있었다.
때로는 덤덤하거나 무뚝뚝하고, 때로는 밝거나 귀엽고, 또 때로는 듬직하고, 아들처럼 덤벙거리거나 활달한, 다양한 모습의 네가 좋다. 모든 면에 서툴러 무채색인 내 곳곳에 너의 색이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물들어갔다.
나는 그런 너를 닮고 싶었나 보다. 나를 듬뿍 사랑해 주는 마음에 동해 굳게 잠겨 있던 문이 조금씩 열렸고, 그런 나를 천천히 기다려주는 너에게 보답하기 위해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내 마음을 하나 둘 너에게 건네주었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도 기뻐하고, 용기 내어 너에게 전한 내 진심을 보물처럼 받아들이는 네가 이제는 내 삶에 있어 너무나 소중해졌다.
어느 날, 우리는 여느 때처럼 영화관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평범하지만 다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엄마의 품에 폭 안겨 있는 아기와 부부가 안으로 들어왔다. 너와 눈을 마주치며 생글생글 웃는 아기의 표정에 저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힘겹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는 한껏 아기의 미모와 귀여움에 대해 칭찬했다.
"빨리 너랑 결혼해서 저렇게 예쁜 아기 낳고 싶다."
그리고 가벼운 듯 가볍지 않게 말을 꺼냈다. 문득 너의 등 뒤로 오묘하게 일렁이는 보라색 아우라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내게 보라색은 우울함을 나타낼 때 쓰는 색깔, 이도저도 아닌 색깔, 어딘가 모르게 우중충해 보이는 색깔로 인식되어 있었다. 하지만 너를 만나고, 너에게 스며들게 되고 난 후, 그 색은 더 이상 그런 느낌의 색이 아니게 되었다. 그저 너와 아주 잘 어울리는, 어느새 내 마음 한편에 스며든 그런 색이었다.
"그러게."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너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폭 안아주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옮겨 콜라와 제로콜라를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거라면 뭐든 좋다는 너의 손을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