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도서전, 첫 경험

by 다운

올해부터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출판사나 공모전에 내 원고 투고해 보기, 두 번째는 일본 여행 가보기(아마 내년으로 미뤄질 듯하다),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서울국제도서전을 가보는 것이었다. 14살부터 10년이 넘도록 책을 옆구리에 끼고 살고, 작가를 꿈꾸면서 한 번도 도서전에 가지 않는 것은 작가지망생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게다가 올해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여파로, 텍스트힙이나 책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책이라는 문화가 수면 위로 재부상한 날이 아닌가.


서울국제도서전 사이트를 수시로 확인하며 얼리버드 티켓 예매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예매일 당일 아침, 당시에는 취업 준비와 오후 알바를 병행하며 야행성으로 지내왔기에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겨우 티켓 예매를 성공했다. 얼마 되지 않아 현장에서 티켓을 구매할 수 없다는 소식을 접하고, 하마터면 버킷리스트 중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약간의 아찔함을 느꼈다.


아무튼 처음으로 지하철 첫차를 타게 해 주고, 수많은 책들과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몇 시간을 걷고 보고 듣게 해 준 서울국제도서전에 나는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 감사함을 잊지 않기 위해 사진과 함께 간단한(?) 후기를 남겨보려 한다.


KakaoTalk_20250624_101248816_01.jpg 도서전에서 구매한 책과 굿즈


점찍어놓은 1순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이자 나의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박정민 대표님(배우님)께서 운영하시는 출판사 무제였다. 입장하자마자 무제 부스로 뛰어갔는데, 공간은 한정적이고 사람은 끝없이 모이는 탓에 아예 줄을 서는 공간을 따로 마련해 둔 상태였다. 직원 분의 안내를 받아 찾아간 공간에는 이미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그 사이에서 1시간을 기다려 겨우 무제 부스 앞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그 1시간이 마냥 지루하지는 않았다. 빠른 구매를 위해 나눠주신 리스트를 구경하기도 하고, 판매가 부진한 핸드크림과 커피믹스 등을 홍보하러 오신 직원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웃기도 하고, 직접 핸드크림을 손등 위에 짜주시는 직원 분의 앞에 마치 고양이처럼 주먹 쥔 손을 내미는 사람들을 보며 귀엽다는 생각을 문득 하기도 하고, 챙겨 온 도서전 기념 도서 <믿을 구석>을 읽다 보니 훌쩍 내 순서가 다가왔다. 기념 도서는 교보문고에서 미리 주문해 도서전 첫날에 받을 수 있었다. 각자가 생각하는 믿을 구석에 대한 이야기를 묶은 기념 도서였고, 조예은, 천선란, 손원평 작가님, 그리고 박정민 대표님의 글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박정민 대표님의 페이지에 사인을 받는 데에도 성공했다.


KakaoTalk_20250624_101248816_02.jpg 도서전의 모든 직원 중 가장 인기가 많았을 박정민 대표님의 용안


팬이 된 이후로 처음 실물을 보는 것이었기에, 박정민 대표님을 코앞에서 보자마자 손이 달달 떨렸다. 며칠을 열심히 일하시느라 당이 떨어지실 대표님을 위한 초콜릿과 손 편지를 주는 데는 간신히 성공했지만, 부끄러운 마음에 사진 요청은 하지 못하고 다음 분들을 위해 후다닥 뛰쳐나왔다. 꼭 사고 싶었던 오디오북 키링이 매진된 점은 매우 아쉬웠지만, 대표님의 실물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KakaoTalk_20250624_101248816_04.jpg 오후에 진행된 행사, '잊지 않으려는 호명'


맥도널드에서 빠르게 배를 채우고, 오후 행사를 보러 가기 위해 책마당으로 또 한 번 달렸다. 30분 전에 도착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간 바깥을 둘러싸고 있어서 그 틈을 파고 들어가 간신히 대표님과 김금희 작가님의 얼굴을 보는 데 성공했다.

<첫 여름, 완주>와 관련된 재치와 유익함이 모두 포함된 이야기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고, 웃음꽃이 피어나기도 하는 순간이었다. 사회를 맡으셨던 이다혜 기자님의 '작가와 출판사의 대표, 그리고 배우로서 활동하면서 잊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작가님은 '명랑함'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고 대답하셨고, '명랑'은 단순히 긍정적이거나 밝은 것과는 다른, 아주 어려운 것이라는 기자님의 덧붙임 말에 익숙하지만 낯선 단어가 주는 의미와 느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대표님께서는 본업인 배우의 이야기를 빌려와 영화 속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바깥에서 듣고 보고 알게 된 것을 찾거나 기억하는 게 아닌, 내 안에 있는 모습을 토대로 연기에 몰입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이때 나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유이가 번뜩, 하고 떠올랐다. 대표님의 본업으로 나간 한 인터뷰에서 유이를 완벽하게 연기하기 위해 실존하는 누구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 있는 여성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래, 그래서 난 대표님을 좋아했지.


관객분들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행사는 아주 재미있게 마무리되었다. 듣는 소설이니만큼 성우로 캐스팅되신 배우님들의 역량이 아주 중요할 터인데, 그 캐스팅에서 작가님의 의견이 들어갔는지에 대한 질문이었고, 작가님은 대표님을 어저귀로 생각했지만 이야기 속 '잘생긴 리트리버'로 표현된 캐릭터와 본인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항의 메일이 올 수도 있다는 대표님의 만류와 함께 어저귀 캐스팅은 다른 배우님에게 넘어가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리트리버는 잘 모르겠지만, '잘생긴'이라는 형용사는 잘 어울리시는데.


KakaoTalk_20250624_105728386_02.jpg 여름의 크리스마스 콘셉트가 돋보이는 '은행나무' 출판사 부스.


이후에는 정말 많은 부스를, 입구에서 나누어주신 전지 사이즈의 배치도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책을 구경하고 구매했다. 내가 계획한 도서만을 구매하기 위해 정말 많은 애를 썼고, 눈을 질끈 감고 돌아서기엔 매력적인 책과 굿즈가 너무 많아 정말 힘들었다.


인스타그램으로 팔로우를 해 둔 출판사 부스에는 필수로 들렸었는데, 가장 인상적인 곳을 고르자면 바로 '텍스티' 출판사였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라고 이야기해 드리니 정말 반가워하시며 스티커와 부채, 책갈피 등 굿즈를 한 아름 안겨주시고, 책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 주시는 등 한 분 한 분의 독자를 소중히 대해주셨다. '텍스티'의 영업왕이라고 불리시는 직원분께서 <난기류>를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유일하게 계획되지 않은 도서를 구매하기도 했다. 여름이 끝나기 전에 이 책을 완독하고 SNS에 서평을 올려야겠다고 다짐했다.


KakaoTalk_20250624_105728386.jpg 문학은 이번 생에도, 다음 생에서도 꼭 만나고 싶은 동반자.


정말 다양한 콘셉트의 부스와 그에 어울리는 훌륭한 책들, 그것을 뒷받침하는 굿즈를 모두 보고 오니, 책에 관한 나의 식견이 조금이나마 높아진 것 같아 다리는 아프더라도 머리는 든든한 그런 도서전이었다. 부산에 사는지라 서울을 오가는 것이 여간 큰일이 아니지만,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도서전에 방문해 더 많은 부스를 더욱 깊게 둘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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