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제주국제관광마라톤
하프 (Half) 완주 후기

이번 생에 마라톤은 처음이라

by 한톨

저는 좀 무모한 사람입니다. MBTI로 치면 극단적인 P(즉흥적)이죠. 수영을 배운다면, 일단 물에 뛰어들고 보는 유형입니다. 이번 제27회 제주국제관광마라톤(이하 제국마)도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대뜸 마라톤에 뛰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고, 준비할 기간이 적당히 남아있는 마라톤에 덜컥 신청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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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비까지 입금했으나 몸이 아파서 며칠간 뛰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목표를 [2시간 이내 완주]로 정하고 바꾸지 않았습니다. 난생처음 10KM 뛰어보고 나서 [그냥 완주]로 바꿨습니다. 사실 10KM 뛰는 것도 버거웠습니다. 달리기와 접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음 하나 믿고 하프 마라톤에 덜컥 도전했습니다.

아는 것이 없다면 두려움도 없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만, 다행히 이번엔 재앙이 일어나진 않았습니다. 건강하게 완주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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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뭔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만, 다행히도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룸메이트가 마라톤 유경험자였습니다. 덕분에 이것저것 많이 배웠습니다. 그와 동시에 제가 얼마나 대책 없이 제주도에 왔는지도 깨달았습니다. 룸메이트가 물었습니다. "러닝화는 어떤 걸로 가져왔어요?" 룸메이트는 번쩍이는 러닝화를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도리질하며 답했습니다. "그냥 운동화 신고 뛸 건데요." 룸메이트가 당황한 듯 보였습니다만, 이해심이 많은 건지 아니면 제게 관심을 쏟기 귀찮았는지 그에 대해 더 묻지 않았습니다.

당일 아침 6시.jpg 축제 당일 오전 6시

축제 당일 오전 7시 30분까지 집결하라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마라톤에 뛴 적이 있는 룸메이트는 구태여 시간에 맞춰 갈 필요가 없다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날씨가 조금 풀릴 때까지 룸메이트와 함께 거실에서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룸메이트의 경험담을 꿈처럼 들을 뿐이었죠. "마라톤은 뽕맛이 있어서 좋다." 등등 알 수 없지만 기대하게 만드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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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마 시작 전 분위기

경기장에 도착했습니다. 해는 뜨지 않았고 날씨는 선선했습니다. 룸메이트는 "뛰기 좋은 날씨!"라며 좋아했습니다. 뭔지 몰랐지만 일단 긍정했습니다. 행사장에 페이스페인팅을 무료로 해주는 곳이 있어서 거기로 갔습니다.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 나비 모양을 골랐습니다. "남자분인데 괜찮겠어요?"라고 물었으나 저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실은 거울 보고 뛰는 게 아니라 상관없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내 마음에 드는 걸 고른 거죠, 뭐. (이런 것마저도 굉장히 즉흥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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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마 식전 행사

식전 행사는 어수선했습니다. 하늘엔 구름이 꼈고 날씨는 쌀쌀한 편이라 그런지 참가자들이 굼뜨게 움직여서 진행자가 참가자들을 운동장으로 이끌어내는 데에 꽤나 애먹었습니다.

사진으로 찍진 않았습니다만, 마라톤 개최에 도움을 준 높으신 분들을 소개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누군지 몰라서 박수만 쳤습니다. 뛰고 나니 그분들께 감사했습니다. 마라톤을 위해 애쓴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늦게나마 진심을 다해 감사하다는 말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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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1. 8:30AM : 풀(Full)과 하프(Half) 참가자 출발!

>출발선부터 5KM까지

풀 또는 하프 뛰는 참가자는 생각보다 적었습니다. 그래서 보다 많은 분들의 축하를 받으며 뛰기 시작했습니다. 룸메이트가 이야기했던 '마라톤의 뽕맛'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환호받은 적이 있었나?' 싶었죠. 그래서 보란 듯이 마구 달리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마라톤에 대해 조금이라도 검색을 했었고, '초반에 무리하지 마라'라는 조언을 새겨들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조언과 달리 처음부터 치고 나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저처럼 천천히 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치고 나가는 사람 대부분이 뽕맛에 취해 무리한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아니었습니다. 그중 대부분은 진짜로 잘 뛰는 사람이었습니다. (전 그들을 '괴물'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2.5KM마다 급수대가 있는데 첫 번째 급수대를 지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미친 듯이 질주하는 남자들이 뒤에서 나타났어요! 조금 더 뛰니까 그 남자들이 반대로 뛰어 저를 지나가더군요. 10KM 참가자들이었습니다. 그러고 얼마 가지 않아서 10KM 반환점을 지나쳤습니다. 대략 5KM를 뛰었다는 뜻이죠. 그때까지는 여유로웠어요. 제주도의 아름다운 해변을 감상하며 사뿐사뿐 뛰었죠!

>5KM~하프 반환점(약 11KM)까지

이때부터 조금씩 힘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없으나 코로 숨 쉬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힘들 때만 입으로 숨 쉰다는 강박) 웬만하면 코로 숨 쉬며 달렸는데, 이 부근부터는 그게 불가능했습니다.

7KM 팻말을 지나칠 무렵에 저와 반대로 달리는,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뛰는 마라토너를 보고 '이번 마라톤에서 순위권에 들겠다!!'라는 헛된 꿈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풋내기 러너의 부질없는 바람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죠. "괴물이다. 저들은 나와 달라!" 그들을 인정하며 "반환점이 얼마 남지 않았어!" 스스로를 달랬습니다만, 달리고 또 달려도 반환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때부터 경치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달려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채웠죠.

>반환점에서~19km까지

드디어 반환점! 괜히 기분이 좋아서 조금 속도를 냈습니다. 그게 무리였습니다.

반환점 돌기 전 바나나를 집다가 떨어뜨리고 난 이후로 급수대마다 멈춰 서서 물을 마시자고 규칙을 세웠습니다. "먹을 때는 먹기만 하자!" 그 또한 달리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멈추고 난 후 속도를 내어 원래 페이스를 되찾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것도 무리였습니다. (무리무리!)

사실 마라톤을 뛰기 전에는 제 실력에 대해 과신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스퍼트 하면 결국엔 내가 다 이겨!" 하는 믿음이 있었죠. 그러나 착각이었습니다. 스퍼트는커녕 원래 속도를 유지하는 것도 버거웠습니다.

'멈추면 끝이다!'라고 되뇌며 급수대에서만 잠깐 멈추고 계속 달리기를 반복했습니다.

이때부터 제주도의 푸르른 바다는 뛰어들고 싶은 곳으로 변했습니다.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저 아름다운 바다에 뛰어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진행 요원이나 경찰분들이 저를 끌어냈겠죠?

>19km~도착(21.9KM)까지

이때부터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죽을 맛이었습니다. 시점이자 종점인 구좌체육관에 가까워질수록 응원해 주는 분도 늘었는데, 응원에 호응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감사한 마음은 있는데 반응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함께 달리는 무리가 생겼습니다. 종점이 코앞이고 더는 낼 힘이 없으니 비슷한 속도를 내는 러너끼리 모여서 달렸습니다. 서로의 숨소리만 주고받으며 계속 달리는데, 그 때문에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엄청난 소속감친밀감, 더 나아가 인류애를 느꼈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하나였습니다. 성별, 나이, 그런 건 중요하지 않고 그저 뛰는 한 사람으로 존재했죠.

낭만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이 구간은 지옥이었습니다. 진짜 멈추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뛰었어요.

멈출 수 없었습니다. 멈출 바에야 쓰러지겠다고 다짐했죠. 그래서 뛰고 또 뛰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의지의 발현이었다.
-『뛰는 사람』(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中

종점이 가까워 오자 고마운 분들이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힘을 쥐어짜서 달렸고 출발선을 통과하자마자 저는 멈춰 섰습니다. 혼자 참가했기에 누구도 반겨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만, 순수하게 기뻤습니다. 역설적으로 그때, 제가 얼마나 인정에 목말랐는지를 깨달았습니다.

한계까지 내달리고 나면 반드시 찾아오는 찡한 두통에 나만 아는 쾌감에 젖어 급수대를 찾다가 완주 기념품을 주는 곳에 다다랐습니다. 그리고 물과 함께 기념품을 받았습니다.

마침내 난생처음 마라톤이 끝맺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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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의 기쁨에 취해

얼마간 앉아있었습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햇살과 함께 앉아있었습니다. 어느덧 해가 나와 세상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쉬고 나니까 서서히 감각이 살아났습니다. '완주했다'라는 승리감을 보다 누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행사장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참, 쉬고 있을 때에 룸메이트도 만났습니다. 힘들어서 살갑게 반겨주지 못했던 게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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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장을 돌아다니며 여러 행사에 참가했습니다. 미처 담지 못한 행사도 많습니다. 마라톤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제국마에 참가하시길 추천해요! 정말 '혜자' 축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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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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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무료 전복죽!

전복죽이 맛있었는지 묻지 마세요. 그때는 뭐든지 맛있었을 겁니다. 전복죽보다는 전복죽 먹을 때에 같은 테이블에 앉아 저를 반갑게 맞아주셨던 아주머니가 떠오릅니다. "마라톤 뛰었죠? 우리가 열심히 응원했어요!"라며 말을 건네던 제주도 아주머니,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힘들어서 감사한 마음을 전부 전하지 못해서 아쉬워요. 어째 아쉽다는 말을 이렇게 많이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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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혼자 돌아다니니 심심하기도 했고, 지치기도 해서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가기 전에 기록증 뽑아주는 곳에 들려 기록증을 뽑았습니다. 그때 기록을 처음 보았는데 아무것도 몰랐던 때 세웠던 목표를 이루었더군요! 정말, 정말 놀랐습니다. '나 생각보다 대단한 놈인데?'

기록증.jpg 2시간 이내 완주 성공!

2023년 5월 21일, 일요일 오전에 있었던 마라톤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육지에서 온 이름도 모르는 촌놈을 응원해 준 많은 분들과, 허영심으로 달아오른 젊음을 시험할 수 있게 해 준 모든 분(마라톤 주최자, 관계자, 그리고 도로를 통제하며 시민과 말싸움하던 경찰 여러분!),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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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제국마 주최 측에서 보낸 NFT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주최 측에서 준비를 진짜 많이 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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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마 완주 인증 N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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