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창작학과에 지원한 적이 있다. 정확히 두 번.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서사창작과와 서울예술대학교(이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가고자 입시를 두 번 치렀다.
한예종을 목표로 공부했다. 실은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랬다고 해서 떨어진 건 아니고, 내 실력이 모자랐다. 한예종에 들어가기엔 내가 부족했고, 입시 문제를 푸는 내내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당연히 떨어졌다.
한예종에 들어가고자 대학교를 자퇴했으니 입시에 떨어지고 나서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대학생도 아니었고,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더욱 아니었다.
그저 집에서 밥이나 축내는 인간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아쉬운 마음이 커져서 블로그에 글을 남겼다. 대충 ‘한예종 1차 시험 후기’따위였다.
댓글에 누군가 나를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자신도 나와 같았으며 지금은 서울예대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입시 스승과 그렇게 여러 번 말을 주고받았다.
나는 여러모로 게으른 학생이었다. 숙제로 낸 글도 잘 쓰지 않았다. 유일하게 칭찬을 들은 때가 있었는데, 내가 기억하기로 공감각을 잘 썼기 때문이었다. 어떤 문장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입시 스승은 그런 문장을 쓸 수 있다는 건 재능이 있는 거라고 말했다.
기뻤다. 내게 재능이 있다니. 사실 생각지도 못했다. 내게 재능이 있다고 믿었지만 정말로 있으리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그것도 내가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재능이 드러났다고 하니 더욱 신이 났다.
내가 생각하는 재능과 딱 들어맞아서 그 말을 믿었다. 재능이란, 본디 남이 보기에 엄청난 것이라고 할지라도 스스로는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쉽게 말해서, “이걸 왜 못하지?”라고 말하며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해내는 게 곧 재능이다. 남들이 그것을 보고 박수를 치거나 “너 재능 있다”라며 치켜세운다면, 그것이야말로 재능이다.
입시 스승께서 서울예대 입시를 도와줬으나 역시 떨어졌다. 입시를 마치고 나서 스승과 더는 이야기를 나눌 일이 없었고 우리는 연락을 끊었다.
굉장히 감사했다. 누군가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는 호의를 받는다는 건 기쁜 일이다. 그에 더해 문예창작학과 입시에 도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접하지 못할 자료를 직접 봐서 좋았다.
생경한 느낌은 언제나 반갑다. 낯설어서 좋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좋은 느낌이 옅어지고 있어서 아쉽다. 어쩔 수 없는 건가 싶다.
문예창작학과 입시에 다시 도전할 일은 아마 없을 듯하다. 나이도 어느 정도 있고―이것은 변명이지만, 무언가를 배우는 데에 4년이나 쓸 수 있을 만큼 돈이 많지도 못하다. 그렇다고 해서 글쓰기를 그만둘 생각은 없다. 소설 쓰기도 마찬가지다.
소설 쓰기는 여전히 낯설다. 언제나 낯설어서 항상 좋은 것 같다. 다만 이젠 낯설고 싶지 않다. 친근한 소설이 한 편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직접 쓴 세계’라는 친구를 사귀고 싶다. 단 한 편이라도 좋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