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고 방향이 없다. 방향성이 없다. 그래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누구도 건들지 않지만 휘둘린다. 자기 꼬리를 쫓다가 길을 잃은 개처럼 군다.
그나마 글은 짧게 보면 재밌을지도. 아무리 슬픈 비극이라고 할지라도 즐거운 장면이 있기 마련이다.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비극은 원래 옳게 됐어야 할 것이 그르게 돼서 비극이다”라는 말이 있듯 비극에도 옳거나 즐거운 일이 들어있다.
인생은 다르다. 인생은 유기체처럼 하나로 이어져 있다. 그러니 인생의 어느 부분이라고 말하는 건 옳지 않다. 기억을 완전히 잃는 게 아니라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 내가 글을 쓰며, 똥 마려운 개처럼 돌아다니는 이유는 어쩌면 십여 년 전에 겪은 어떤 사건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이렇게 행동하고 저렇게 말하는 이유가 과거에 있었던 일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 반드시 그럴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무언가 만들어지는 일은 없다. 내가 알기로 우리를 둘러싼 우주는 그렇게 만들어졌지만, 우주 말고 다른 것이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늘어져 있는 깃발을 보면 괜히 우울하다. 어쩌면 화가 날지도 모른다. 자기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 여길지도 모르니까. 깃발은 바람에 나부껴야 한다. 어딘가로 꼬리를 향하고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한다. 축 늘어져 있는 깃발은 무기력해 보이고, 패배자처럼 보인다.
인생도 그렇다.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인생은 활기가 넘쳐 보이고 박수를 쳐주고 싶다. 목표가 있는 사람은 걸음걸이도 힘찬 법이다. 그와 달리 목표가 없는 사람, 즉 방향성이 없는 사람은 시체처럼 걷는다. 그림자보다 더 느긋하게 무덤으로 나아간다. 그런 사람에게 박수를 치는 건 조롱일 뿐이다.
마라톤을 뛰는 사람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목표가 있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있는 힘껏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다르게 목표가 없이 무작정 뛰는 사람은 박수를 받거나 격려받지 못한다. 그럴 만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의미는 중요하다. 의미를 다른 말로 하면 희망이다. 희망 없는 삶은 불행하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희망이 없다면 더 나아갈 수 없다. 희망으로부터 의지가 나온다.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에 의지가 생기고, 의미 있는 일을 하기에 의지가 자란다.
박수받는 게 중요할까. 그저 내 할 일을 하면 안 될까. 마라톤이 아니라 날마다 목표로 정한 만큼 뛰면 안 될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 정한 목표를 이루고자 날마다 노력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박수받아 마땅하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렇지 못하다.
항상 혼자 있어서 몰랐지만, 나는 주변에서 지지해 줄 때 힘이 난다.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면, 그것은 남들로부터 들을 칭찬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칭찬받을 만한 일이라며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칭찬받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야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방향을 정하는 게 어렵다. 남에게 칭찬받고자 사는 삶을 싫다. 하지만 남이 칭찬하지 않으면 나는 즐겁게 살 수 없다. 나에게 남은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존재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에게 칭찬받겠다는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세우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흩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