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나와 행위를 곱한 값이다. 나에게 그럴싸한 역할이 있다면 작은 행동을 해도 값이 커진다. 그럴듯한 역할을 맡은 적이 없기에 나는 언제나 행위, 즉 행동으로서 인생을 정의해 왔다.
나는 숫자‘1’로 계산하면 된다. 거기에 내가 한 행위를 곱하면 내 인생이 된다. 그동안 내가 한 행위는 모조리 회피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 문제를, 책임을, 그리고 그동안 애써 무시한 것을 회피하며 회피의 인생을 살았다.
회피하면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회피는 또 다른 회피를 낳고 회피를 만든다. 회피하면 결국 회피할 수밖에 없다. 영영 해피(Happy)할 수 없다.
천천히 되짚어보겠다. 대학교가 싫어서 반수를 핑계로 대학 생활을 회피했다. 성적 경고가 뒤따랐고 그로 인해 대학 생활이 무너졌다. 반수로 낭비한 세월을 회피하겠다며 입대를 결정했다. 1년 동안 집에 머물다가 군대에 갔지만 그동안 내가 회피해 온 질병이 돋았다.
입대는 악을 쓰며 회피하던 문제와 마주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내가 회피하던 것들이 속속들이 인생이란 무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울증, 회피성 성격장애 따위들. 그다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손님이었지만 더는 회피할 수 없었다. 그들조차 회피한다면 나는 무대가 아닌 무덤에서 주인공 노릇을 해야 했다.
그동안 애써 피해온 문제를 맞닥뜨리고 나서도 나는 회피를 거듭했다. 돌이킬 생각은 하지 않고 그럴 만한 용기도 내지 못했다. 잔뜩 허문 상처를 아물게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피를 뚝뚝 흘리며 세상을 돌아다닌 셈이다.
나를 돌보아야 할 때 돌보지 않는 것 또한 회피다. 책임에 맞서지 않는 모든 행위를 회피라고 본다. 그때 나는 또다시 회피했다. 회피하고 또 회피하고 회피했다.
인생에서 회피 말고 그럴싸한 행위를 한 적이 없다. 그렇다 보니까 내 인생이 회피가 됐다. 인생을 회피하려고 한 적도 있다. 즉, 삶이 아닌 죽음에 다가가려고 했다. 원치 않은 존재들이 무대에 오른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다시 말해, 나란 인간이 갖고 있는 문제들이 싫었다. 그리고 그 문제들과 내가 영영 어울릴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나서는 인생이 미웠다.
세상을 비난한 적도 있다. 나를 모질게 군 인간들을 미워한 적도 있다. 나를 방치한 어른들을 욕한 적도 있다. 그래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지금 내가 하지 않는 모든 나쁜 행위는 실은 해봤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해봤자 좋지 않다는 걸 알아서 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선물인 지능 덕분이라면 마땅히 기뻐하겠다. 내가 더 멍청해지지 않을 만큼 똑똑하다는 건 정말로 기뻐할 만한 일이다.
회피의 결과는 회피다. 겪어 봐서 안다. 달라지고 싶다면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늘 똑같이 산다면 똑같이 죽을 뿐이다.
인간은 태어난 순간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화살이다. 죽음에 다다르는 궤도를 바꿀 순 없어도, 죽음까지 가는 동안 어떻게 살지는 스스로 정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인생이라고 부른다.
인생이라 부르고 하루를 산다. 하루가 곧 인생이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건 오늘뿐이다. 그 오늘이 곧 인생이다. 오늘 나는 무엇이었는가, 오늘 나는 행복했는가.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