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정확함보다 최선이 중요하다는 착각

상사가 가르쳐준 사회의 문법

by 한톨

회사라는 조직에서 내가 가장 자주 범했던 오류는 ‘성실’과 ‘최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마법의 열쇠라고 믿은 것이었다. 나는 내가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이 결과물의 품질을 보증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는 나의 땀방울을 재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그들이 가치있게 여기는 것은 오로지 ‘오차 없는 결과물’뿐이다.


어느 날이었다. 상사가 내 모니터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섞여 있지 않았다. “이 수치들, 정확해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내 대답 안에는 내가 그 수치를 뽑아내기 위해 보냈던 지루한 시간들과, 몇 번이고 다시 보며 뜬눈으로 지새웠던 성실함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최선을 다해서 봤으니 정확할 겁니다.”

그때 상사가 내뱉은 말은 내가 쌓아온 가치관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어놓았다. “최선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요. 대충 해도 좋으니 ‘정확’한 게 중요합니다.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틀렸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요.”

결국 나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확합니다.”라고 고쳐 말했지만,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한 명의 인격체가 아니라, 계산된 값을 내놓아야 하는 하나의 소프트웨어 혹은 부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실감했다. 상사는 내가 얼마나 고민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성장을 거두었는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기계의 출력값이 오류 없이 시스템에 맞물려 돌아가는가 하는 점뿐이었다.


인간은 자기 자신밖에 경험하지 못한다. 그마저도 그 찰나의 순간에 처한 자신만을 겪을 수 있다. 내가 쏟은 최선은 나에게만 유효한 주관적 위안이었다. 하지만 상사가 요구한 ‘정확함’은 제3자의 눈, 즉 ‘상식’이라 불리는 사회적 약속이었다. 나는 나의 세계 안에서 발버둥 쳤지만, 회사는 나를 그 세계 밖으로 끌어내어 차가운 규격 속에 끼워 맞추려 했다.

이후로 나는 퇴사하기 전까지 줄곧 ‘후회’라는 감정과 싸워야 했다. 후회는 대개 과거의 내가 내린 판단이 지금의 상식에 어긋날 때 발생한다.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상식의 눈은 더 선명해지고, 그때 왜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했느냐며 과거의 나를 다그친다. 내가 퇴사를 결심했을 때도 주변에서는 후회할 것이라 경고했다. “지금은 힘들어도 버티는 게 상식이다”, “대책 없이 나가는 건 오답이다”라는 말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었다. 상식이 요구하는 ‘정확한 답’을 내기 위해 나의 ‘최선’을 매일같이 난도질당해야 한다면, 그 삶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대충 해도 정확한 결과만 내놓으면 장땡인 세상에서, 온 마음을 다해 부딪히는 인간의 열정은 정말로 거추장스러운 부산물일 뿐인가.

시스템은 효율을 사랑하고 인간은 의미를 사랑한다. 회사는 나에게 효율을 요구했고, 나는 의미를 찾으려 했다. 그 간극이 벌어질수록 나는 내가 고장 난 기계처럼 느껴졌다. 틀린 답을 내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쓸수록 내 안의 무언가는 조금씩 닳아 갔다. 상사가 말한 문법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어쩌면 나라는 인간의 고유한 결을 지우고 매끄러운 강철 부품이 되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퇴사함으로써 ‘정확한 오답’이 되기로 했다. 아니, 그보단 잠깐이나마 틀리고 싶었다고 말하는 게 옳겠다. 사회가 정한 정답의 궤도에서 벗어나는 것은 상식적으로 틀린 일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 자신에게만큼은 솔직한 선택이었다. 어떤 선택을 하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점임을 나는 안다. 이제 나는 누구의 검토도 받지 않는, 오로지 나만이 책임지는 불확실한 수치들을 내 인생의 장부에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비록 사회의 문법에는 맞지 않을지라도, 내가 흘린 땀이 온전히 내 것이 되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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