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기간제 근로자라는 ‘지저분한 일’ 전담반

임시 부품이 감당해야 했던 소외감

by 한톨

회사는 나를 고용했지만, 나를 소유하려 하지는 않았다. 나는 ‘기간제 근로자’라는 이름표를 달고 들어온 외인이었다. 이곳의 시스템은 정교하게 짜여 있었지만, 그 정교함은 오직 정규직이라는 견고한 성벽 안의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만 작동했다. 성벽 밖에서 잠시 안을 들여다보도록 허락된 나 같은 존재들에게 허락된 자리는 시스템의 가장 말단, 혹은 아무도 손대고 싶어 하지 않는 회색지대였다.

우리는 흔히 ‘떠날 사람’으로 여겨졌다. 회사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대단한 성과나 혁신이 아니었다. 그저 정규직들이 본연의 고귀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들의 손을 더럽히는 자잘하고 번거로운 업무들을 조용히 치워주는 ‘전담반’의 역할이었다. 나에게 주어지는 일들은 대개 유통기한이 짧거나, 책임소재가 불분명하여 누구도 맡길 꺼려 하는 지저분한 성격의 것들이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처리하기 곤란한 민원이나 서류 뭉치들은 내 책상 위에 쌓였다. 나는 그 일들을 묵묵히 처리하며 생각했다. 내 노동의 가치는 이 일들이 사라짐으로써 증명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조만간 사라질 존재이기 때문에 이 일들이 나에게 온 것인가. 기간제라는 신분은 나를 투명인간으로 만들었다. 회의 시간에는 내 의견이 묻히기 일쑤였고, 회식 자리에서는 내일이면 없을 사람처럼 취급받았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규칙 아래 움직이고 있었지만, 나는 결코 그들의 일원이 될 수 없었다.

나에게 이 일은 생존을 위한 돈줄이었지만, 그들에게 나는 언제든 대체 가능한 소모품이었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없어도 내일이면 다른 누군가가 내 자리에 앉아 똑같이 지저분한 일들을 처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 ‘대체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주는 소외감은 생각보다 서늘했다. 내가 아무리 온힘을 다해 그들의 문법을 익히고 조직에 섞이려 애써도, 내 계약서에 적힌 종료일은 변하지 않는 사형 선고처럼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 날은 사무실 구석에서 낡은 서류함을 정리하다가 전임자가 남긴 메모 한 장을 발견했다. “어차피 아무도 안 알아주니 적당히 하세요.” 그 짧은 문장에는 기간제 근로자가 겪어야 했던 모든 울분과 체념이 녹아 있었다. 그 전임자 또한 나처럼 '1급수 인재'를 꿈꾸며 들어왔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자신을 쓰레기통 옆의 파지함 정도로 여기며 버텼을까. 그 메모를 보며 나는 깊은 동질감과 동시에 모욕감을 느꼈다.

우리는 떠날 사람들이다. 하지만 떠나기 전까지는 이곳의 공기를 마시고, 이곳의 스트레스를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살아있는 인간이다. 회사는 우리에게 애사심을 강요하지 않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애사심이 없기에 더욱 비참해졌다. 내가 속한 곳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 내가 하는 일이 조직의 핵심이 아니라 그저 배설물을 치우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매일 아침 확인하며 출근하는 일은 영혼을 갉아먹는 작업이었다.

결국 내가 퇴사를 결심한 것은 지저분한 업무 때문이 아니었다. 그 업무를 처리하는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 그리고 그 시선에 익숙해져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기 시작한 나 자신 때문이었다. 나는 더 이상 임시 부품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비록 작고 보잘것없더라도, 내 삶의 전체를 관통하는 진짜 엔진이 되고 싶었다. 기간제라는 꼬리표를 떼어내는 순간, 나는 비로소 그들이 던져준 지저분한 일들로부터, 그리고 나를 묶어두었던 소외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떠나는 날, 내 책상은 놀라울 정도로 깨끗했다. 내가 치웠던 그 수많은 지저분한 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내 자리엔 다시 새로운 임시 부품이 들어올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을 나왔다. 성벽 안의 사람들은 여전히 분주했고, 성벽 밖으로 걸어 나오는 나를 아쉬워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가벼웠다. 이제야 비로소 내가 감당해야 할 진짜 내 인생의 일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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