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뜯지 않은 달력과 차(茶)

고작 두 달을 못 버티고 궤도를 이탈한 자의 평화

by 한톨

퇴사 후 맞이한 첫 번째 아침은 기묘할 정도로 고요했다. 습관처럼 눈이 떠진 시간은 평소와 다름없는 오전 7시였으나, 나를 재촉하는 알람 소리도, 출근을 걱정하는 조급함도 없었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벽에 걸린 달력으로 시선이 향했다. 그곳에는 아직 지난달의 날짜들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출근 준비에 쫓겨, 혹은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조차 궁금하지 않을 만큼 무력감에 젖어 살았던 탓에 차마 뜯어내지 못한 시간의 잔해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달력을 뜯어냈다. 한 장의 종이가 바스락거리며 떨어져 나가는 순간, 마치 내 인생의 무거웠던 한 장이 갑자기 끝나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이제 고작 두 달 남았는데, 그걸 못 버티니?"

"조금만 참으면 경력증명서에 한 줄이 더 깔끔하게 적힐 텐데."

그들의 말은 상식적이었고, 경제적이었으며, 지극히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고작 두 달'은 나에게는 육십 번의 지옥과 같았다.


부엌으로 가 물을 올렸다. 찻잔을 꺼내고 찻잎이 우러나기를 기다리는 시간. 회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사치였다. 사무실에서 차를 마신다는 건 그저 카페인을 뇌에 넣기 위한 생존 활동이었다. 그러나 지금 내 앞의 차는 오로지 나의 감각을 깨우기 위해 살아숨쉬고 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잔을 손에 쥐자 따스한 온기가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이 온기를 느끼기 위해 나는 그 견고한 궤도를 이탈한 것이다.

누군가는 나를 끈기 없는 패배자로 볼지도 모른다. 사회라는 거대한 트랙 위에서 중도 하차한 주자. 하지만 나는 묻고 싶었다.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발바닥에 피가 나도록 달리는 것이 정말 승리인가? 나는 내 발걸음이 절름발이처럼 어긋나고 있다는 사실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억지로 보폭을 맞추려 할수록 내 영혼은 뒤틀려 갔다. 궤도를 벗어나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더 이상 나 자신을 학대하지 않겠다는 준엄한 선언이었다.

고작 두 달을 버티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그 두 달을 버린 것이다. 십 년 뒤의 내가 지금의 나를 돌아보며 "그때 참길 잘했어"라고 말할 확률보다, "그때 왜 그렇게 나를 괴롭혔니?"라며 울먹일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미래의 안정을 위해 현재의 나를 난도질하는 행위는 일종의 할부 인생이다. 나는 더 이상 내 행복을 할부로 결제하며 빚쟁이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씁쓸하면서도 끝맛이 달큰한 향이 입안을 감돌았다. 문득 창밖을 보니 세상은 여전히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정해진 시간에 버스를 타고, 정해진 문법에 따라 대화를 나누며, 정확한 결과물을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그 거대한 기계 장치 속에서 나 하나 빠졌다고 해서 세상이 멈추지는 않는다. 그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하기보다 오히려 안도하게 만들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니, 나는 이제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해도 된다는 허락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뜯어낸 달력 뒷면에 나는 짧게 적었다. '인생은 버티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62일이라는 시간이 내 앞에 놓여 있다. 퇴사하지 않았더라면 사무실 구석에서 지저분한 서류들과 씨름하며 보냈을 그 시간들. 이제 이 시간은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것이다. 비록 통장 잔고는 줄어들고 내일의 불안은 안개처럼 자욱하지만, 적어도 나는 오늘 내가 마시는 차의 온도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궤도를 벗어난 대가는 충분하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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