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부적합’ 딱지를 붙였던 이십 대 초반의 기록
군대에서 돌아온 뒤, 나는 다시 한번 판정대 위에 섰다. 재검 결과는 4급. 사유는 우울증이었다. 누군가는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축하를 건넸을지도 모르지만, 당시의 나에게 그 판정은 ‘사회적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군대라는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한 나는, 이제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문마저 스스로 잠가버렸다. 내 얼굴에는 ‘정신과 4급’이라는 보이지 않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듯했다.
그때부터 나는 나 자신을 ‘부적합자’라는 꼬리표로 정의하기 시작했다. 누구도 내게 대놓고 손가락질하지 않았지만, 온 세상이 나를 향해 “너는 결함이 있는 인간”이라고 속삭이는 환청에 시달리는 꿈을 꾸곤 했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정신과 4급의 비참한 최후’ 같은 괴담들이 떠돌았다. 취업은 꿈도 꾸지 마라,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불가능하다, 결혼은커녕 사람 구실도 못 할 것이다…. 나는 그 절망적인 글들을 진리라도 되는 양 탐독하며 나의 불행을 견고하게 쌓아 올렸다.
빨간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온 세상이 붉게 보이듯, 나는 ‘낙인’이라는 안경을 쓰고 나의 미래를 온통 잿빛으로 물들였다. 취업하기 싫어서, 세상에 나가기 싫어서 일부러 그렇게 믿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를 보호할 명분이 필요했을 뿐이다. 내가 무언가를 시도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세상이 나를 거부하기 때문이라는 비겁한 핑계. 이십 대 초반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나는 스스로를 방에 가두고 방문을 걸어잠궜다. 곧 죽을 사람이 관에 들어가 관뚜껑을 스스로 닫는 양 그랬다.
무엇을 믿는가에 따라 인간은 변한다. 나는 내가 재능 없는 낙오자라는 사실을 믿었다. 믿음은 생각보다 강한 힘을 지녀서, 그 믿음이 깊어질수록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가 되어갔다. 지금 돌아보면 그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희극도 없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 그것은 매일 밤 나를 짓누르는 거대한 비극이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무엇이라고 일컫는가에 따라 그 삶의 궤적이 결정된다. 그때의 나는 나를 ‘부적합자’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나를 ‘작가’라고 부른다. 4급 판정을 받았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생물학적으로 같은 인간이지만, 내가 나를 정의하는 단어 하나가 바뀌자 세상의 색깔도 바뀌었다. 믿음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기도 하고, 사람을 그림자로 만들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내가 대단한 재능을 가졌다고 믿는 어리석음을 범하곤 한다. 남들이 보면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 비웃을지라도, 나는 이 믿음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이 믿음이 있어야만 나는 비로소 방 밖으로 나가 일자리를 구하고, 타인과 눈을 맞추며, 매일 아침 글을 쓸 용기를 얻기 때문이다. 과거의 내가 ‘부적합’이라는 믿음으로 나를 파괴했다면, 지금의 나는 ‘작가’라는 믿음으로 나를 재건하고 있다.
낙인은 타인이 찍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빌려 내가 나에게 찍는 것이다. ‘정신과 4급’이라는 숫자는 그저 신체적, 정신적 상태에 대한 행정적 분류일 뿐, 내 인생의 전체 가치를 대변하는 성적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십 대 초반, 우울한 계절을 통과하며 내가 배운 것은 하나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부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무엇이라 부르는가이다. 비록 내 이력서에는 화려한 경력이 없을지라도, 내 마음의 장부에는 ‘나를 포기하지 않은 기록’들이 한 줄씩 적히고 있다. 그것이 내가 주홍글씨를 지워내고, 1급수의 맑은 의지를 회복해가는 유일한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