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의 쓴맛을 배운 화장품 사업과 지독했던 만취의 밤
퇴사 후 자유는 달콤했으나, 지갑이 주는 경고는 날카로웠다.
대책 없는 퇴사가 주는 형벌은 '궁핍'이었다. 다음 직장을 구할 용기는 나지 않고, 당장 입에 풀칠은 해야 했던 시절. 나는 배고픈 짐승처럼 구직 사이트와 블로그를 뒤적이다가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고 만다. 내 블로그에 달린, "누구나 쉽게 소득을 얻을 수 있다"라는 달콤한 댓글에 답장을 보낸 것이다. 그것이 지옥으로 가는 초대장인 줄도 모르고.
상대방은 치밀했다. 카카오톡으로 친근하게 다가오더니 줌(Zoom) 회의를 통해 그럴싸한 사업 계획을 늘어놓았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라는 호승심이 나를 지배했다. 당시 나는 말 그대로 '거지'였지만, 없는 돈을 쥐어짜 삼만 원짜리 화장품을 샀다. 그 삼만 원은 나에게 제품값이 아니라, 사회라는 무리에 끼워달라는 입장료와 같았다.
그 길로 서울에서 열리는 대규모 행사에 참석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기이했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 열광하고 있었고, 그곳엔 '다단계'라는 단어가 주는 불결함 대신 '사업'과 '성공'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만 가득했다. 사람들은 서로를 치켜세우며 꿈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그 화려한 조명 아래서 소름 끼치는 진실을 보았다. 누군가의 수익은 반드시 다른 누군가의 희생, 혹은 또 다른 사람을 늪으로 끌어들이는 행위 위에서만 성립된다는 구조적 잔인함이었다.
"이건 사업이 아니라 사냥이구나."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며 나는 깨달았다. 다단계는 사기가 아니라 구조였다. 내가 포식자가 되지 않으면 영원히 먹잇감으로 남아야 하는 비정한 피라미드. 나는 그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서고 싶지도, 누군가를 밑바닥에 깔고 앉고 싶지도 않았다.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손에 남은 것은 조잡한 화장품 세트와 스스로를 향한 지독한 수치심뿐이었다.
그날 밤, 나는 편의점에서 보드카 한 병을 샀다. 안주로는 하리보 젤리 한 봉지를 집어 들었다. 평소 술을 즐기지 않던 내가, 심지어 소주 한 잔에도 얼굴이 붉어지는 내가 보드카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제정신으로는 도무지 그 밤을 견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쓴맛이 혀를 마비시킬 때마다 젤리를 씹으며 나는 나의 어리석음을 삼켰다.
술기운은 순식간에 차올랐다. 팔에 피가 통하지 않으면 감각이 사라지듯, 온몸의 신경이 하나둘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의식은 살아있으나 몸은 묵직한 살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것은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겪은 '만취'였다. 차가운 방바닥에 뺨을 대고 누워 나는 생각했다.
"나는 왜 이토록 쉽게 속고, 이토록 쉽게 무너지는가."
다음 날 정오, 숙취보다 더 지독한 자괴감과 함께 눈을 떴다. 난생처음 배달 앱으로 해장국을 시켰다. 뜨거운 국물을 넘기며 나는 다짐했다. 다신 술에 취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다신 나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 속지 않겠다고. 다단계는 나에게 만취를 안겨주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취기가 가신 뒤의 고통은 나를 조금 더 냉정하게 만들었다.
인생은 짧고, 사기꾼은 도처에 널려 있으며, 나약한 마음은 가장 좋은 먹잇감이 된다. 보드카 한 병에 실려 보낸 그 비참한 밤은 내가 사회에서 치른 가장 값비싼 수업료였다. 이제 나는 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며, 나를 구원해 줄 사람은 블로그 댓글 속의 낯선 이가 아니라,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오늘의 나 자신뿐이라는 것을. 하리보 젤리의 인공적인 단맛과 보드카의 타오르는 쓴맛이 뒤섞인 그 밤의 기억은, 지금도 내가 길을 잃으려 할 때마다 혓바닥 끝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나 나를 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