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결심을 가로막는 건 그리 대단치않은 것들
인생의 바닥에도 층수가 있다면, 나는 아마 그날 지하 몇 층쯤 되는 어둠 속에 머물고 있었을 것이다. 새로 들어간 직장은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듯했으나, 출근 단 며칠 만에 나는 깨달았다. 이곳 역시 내가 머물 수 없는 물이고,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었다는 것을. 낯선 사무실에서 맛본 지독한 좌절감은 나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나는 더 이상 이 지긋지긋한 부적합의 서사를 이어갈 자신이 없었기에, 가장 비겁하고도 쉬운 탈출구를 떠올렸다.
퇴근길, 나는 여전히 빳빳한 정장 차림이었다. 사회의 일원임을 증명하는 그 그럴싸한 갑옷을 입고서, 나는 역설적이게도 스스로를 파괴할 도구를 찾았다. 목적지는 동네 작은 슈퍼마켓이었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연탄’. 번개탄이나 연탄 하나면 이 지독한 생의 소음으로부터 영원히 로그아웃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운명은 죽음으로 가는 길목조차 순탄하게 허락하지 않았다. 슈퍼를 샅샅이 뒤졌으나 연탄은 보이지 않았다. 구석구석을 훑는 내 시선을 느낀 주인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칠까 두려웠다. 정장을 빼입은 청년이 추운 겨울 저녁에 들어와 연탄을 찾는 모습이, 마치 "나 지금 죽으러 가요"라고 광고하는 꼴처럼 보일 것만 같았다. 죽는 순간까지도 누군가에게 동정받거나, 혹은 괴상한 시선으로 읽히고 싶지 않다는 그 알량하고도 지독한 수치심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가판대 앞에 서서 한참을 서성였다. 연탄 대신 무엇을 사야 할까. 주인아주머니의 의심을 사지 않으면서도, 이 가게를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수 있는 품목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내 시선이 엉뚱하게도 알록달록한 포장지의 과자 코너에 머물렀다. 나는 홀린 듯 과자 한 봉지를 집어 들었다. 죽으러 온 사람이 과자를 사다니. 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모순적인 풍경인가.
계산대 위에 과자를 올려놓으며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했다. 아주머니는 평소처럼 무심하게 바코드를 찍고 검은 비닐봉지에 과자를 담아주었다. 가게 문을 열고 나오는데, 차가운 겨울바람이 정장 깃 사이로 파고들었다. 손에 든 비닐봉지에서는 과자 봉지가 부딪히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경쾌한 소리가 마치 나를 비웃는 환청처럼 들려왔다.
자취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마지막 끈을 놓기 전, 나는 떨리는 손으로 자살 예방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 내 비명을 들어주길 바랐던 것일까, 아니면 이 선택이 틀렸다고 말려주길 바랐던 것일까. 수화기 너머로 단조로운 연결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소리는 끝내 사람의 목소리로 이어지지 않았다. 기계적인 연결음이 길어질수록 나의 고독은 더욱 선명해졌다. 결국 나는 아무 말도 전하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 세상에 내 편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기분이었다.
비참함과 우스꽝스러움이 뒤섞여 결국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정장을 입은 채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내가 너무나 한심해서, 그리고 죽음의 문턱까지 가서도 연탄이 없어 과자를 사 들고 온 내 처지가 기가 막혀서 울었다.
그날 밤, 나는 차가운 방에서 연탄 연기 대신 과자를 씹었다. 바삭거리는 식감이 입안을 채울 때마다,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감각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정장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나는 생각했다. 죽음이라는 거창한 비극조차 연탄의 부재와 수치심이라는 사소한 우연에 가로막힐 만큼, 내 인생은 여전히 하찮고도 질기구나.
어쩌면 인간을 살게 하는 것은 숭고한 희망이 아니라, 이처럼 비루하고 사소한 해프닝들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 연탄을 찾지 못한 덕분에, 그리고 연결음뿐이었던 전화 덕분에 오늘을 살고 있다. 비참했던 그 밤의 눈물은, 역설적으로 내가 다시는 그 어둠 속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만드는 가장 단단한 거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