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자퇴라는 화끈한 도망

꿈을 위해 과거를 불태웠지만 남은 것은 공허함뿐일 때

by 한톨

나의 이십 대는 ‘정리’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정리는 질서정연한 수납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불태워 없애버리는 화형식에 가까웠다. 그 정점에는 대학교 자퇴가 있었다. 대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결심은 오랫동안 내 안에서 자라온 것이었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방식은 지나치게 갑작스러웠다.


자퇴의 명분은 '문예창작학과로 진로 변경',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작가’가 되겠다는 꿈이었다. 나는 내가 다니는 대학교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곳에서 배우는 전공이 나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한강 작가가 맨부커상을 받았다는 뉴스를 봤다. 그 소식은 나에게 하나의 계시처럼 다가왔다.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난생 처음으로 가져본 선명한 열망이었다. 나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해야 한다고 믿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학교를 ‘화끈하게’ 버려야 한다고 판단했으나 곧장 실행에 옮기진 못하고 맘속으로만 담아두고 있었다.

자퇴하던 날 나는 해방감보다는 기묘한 수치심을 느꼈다. 학교를 떠나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동안 내가 썼던 일기장들을 모아 불태웠다. 1년 넘게 써온 나의 내밀한 기록들, 그 우울하고 찌질한 문장들이 재가 되어 흩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과거를 지워버리면, 그 자리에 찬란한 미래가 채워질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해방감은 찰나였고, 공허함은 영겁이었다.


아들러 심리학에는 ‘인생의 거짓말’이라는 용어가 있다.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핑계를 만드는 행위를 뜻한다. 돌아보면 나의 자퇴는 꿈을 향한 용기 있는 진격이 아니라, 현실로부터의 ‘화끈한 도망’이었다. 학교라는 울타리가 주는 편안함과 그 안에서 겪어야 하는 경쟁의 피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는 작가라는 거창한 이름을 방패로 삼았다.

결과는 처참했다. 문예창작학과 입시에 두 번이나 낙방했고, 내 손에는 졸업장도, 등단 소식도, 남겨진 일기장조차 없었다. 나는 대학생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며, 그렇다고 무언가를 끝까지 해본 사람도 아닌,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다. 과거를 불태운 자리에 남은 것은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까맣게 그을린 흉터뿐이었다.


내 사고방식은 늘 극단적이었다. ‘그렇다’ 아니면 ‘아니다’뿐인 흑백의 세계. 중간 지대에서 머물며 대안을 찾는 여유 따위는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저버리는 것은 화끈해 보이지만, 사실 가장 무책임한 도박이다. 나는 그 도박에서 패배했고, 그 대가로 이십 대의 가장 빛나는 시절을 고립과 자괴감 속에서 보내야 했다.

인생은 한 번의 선택으로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영화가 아니다. 자퇴를 한다고 해서 내 안의 우울이 사라지는 것도, 글쓰기 재능이 갑자기 폭발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회피했던 그 ‘학교’라는 공간이 실은 내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던 마지막 끈이었음을, 나는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제 나는 안다. 무언가를 그만두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를 지탱할 힘을 기르는 일이라는 것을.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없다"라는 만화의 대사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는 도망쳤고, 길을 잃었으며, 그 방황은 수년 동안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그 재 속에서 나는 다시 쓰기 시작했다. 불타버린 일기장 대신, 이제는 도망치지 않고 기록하는 법을 배운다. 비록 화끈한 결말은 없을지라도, 천천히 한 문장씩 내 삶을 복구해나가는 것. 그것이 과거를 불태웠던 어리석은 청년이 뒤늦게 배운 진짜 ‘정리’의 기술이다.

이전 09화08. 연탄을 사지 못해 과자를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