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기립성 저혈압의 사회생활

“여기서 쓰러지면 구해줄 사람이 없다”는 서늘한 경고

by 한톨

나의 몸은 사회가 요구하는 기민함과 거리가 멀다. 정신적인 예민함이 안테나처럼 외부의 신호를 빨아들인다면, 신체적인 취약함은 결정적인 순간에 전원을 꺼버리곤 했다. 나를 가장 오랫동안 괴롭혀온 빌어먹을 지병, ‘기립성 저혈압’은 내가 성실한 노동자로 기능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어느 아침이었다. 옷장 위에 놓인 알람 시계를 끄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찰나, 세상이 꺼졌다. 다음 순간 내가 마주한 것은 천장이 아니라 차가운 방바닥이었다. 뇌가 무너지는 나를 인지하기에 앞서 중력이 나를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그때 내가 남긴 기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방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졌다.” 잠시 기억을 잃는다는 것,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오프(Off)’ 상태가 된다는 것은 공포를 넘어선 수치심이었다.

이 신체적 결함은 직장 생활에서 더욱 잔인하게 작용했다. 창고형 마트 공산팀에서 일할 때였다. 그곳은 모든 것이 합당하고 직관적인 공간이었다. 힘을 쓰는 만큼 물건이 옮겨지고, 시간을 채우는 만큼 일당이 계산되는 곳. 나는 그곳의 사수가 좋았고, 선입선출의 규칙을 지키며 매대를 채우는 일이 그럭저럭 적성에 맞았다. 하지만 문제는 다시 ‘기립’이었다.

매대 위 선반의 재고를 확인하기 위해 사다리 발판을 오르내릴 때마다 눈앞이 흐릿해졌다. 상자를 들고 허리를 펴는 순간, 세상은 하얗게 깜빡거렸다. 정신이 흐릿해지는 찰나마다 매대를 꽉 움켜쥐어야 했다. 근로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직전, 나는 결국 사장님에게 내 병에 대해 털어놓았다. 내가 궁금한 건 단 하나였다. “만약 제가 여기서 일하다 쓰러지면 어떻게 됩니까?”

사장님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면접 때는 왜 말하지 않았느냐는 타당한 추궁이 돌아왔다. 사수는 조금 더 시원스럽고 그렇기에 더욱 허무한 답을 주었다. “여기서 쓰러지면 구해줄 사람이 없다.” 그 말은 거침없이 날아와 마음 한가운데에 꽂혔다. 그곳에서 나는 동료가 아니라, 쓰러지면 곤란해지는 ‘리스크’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일을 그만두었다. 내가 쓰러졌을 때 회사가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며 외면할 미래가 너무나 선명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만두기로 하고 나서 잔업을 하던 도중에 또 다른 선임이 자신도 저혈압이 심하다고 털어놓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30분간 누워 있어야 하고, 점장이 소리를 질러도 저혈압 때문에 늦게 알아듣는다며 웃었다. 나는 그에게 건강을 돌보라고 했으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쓰러질 위험을 안고서도 그 자리를 버텨내고 있었다. 그가 대단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지나치게 겁쟁이인 것일까.


인생은 '나'라는 장치의 사양을 인정해가는 과정이다. 1급수 인간이라는 정신적 사양뿐만 아니라, 기립성 저혈압이라는 물리적 사양 또한 나의 일부였다. 나는 남들처럼 벌떡 일어나 달릴 수 없는 엔진을 가졌고, 과부하가 걸리면 스스로 퓨즈를 끊어버리는 안전장치가 너무 예민하게 설정된 기계였다.

“여기서 쓰러지면 구해줄 사람이 없다”라는 말은 비단 마트 현장에서만 통하는 진리가 아니었다. 냉혹한 사회 전체가 나에게 던지는 경고였다. 누구도 내 사정을 봐주지 않으며, 쓰러진 자를 일으켜 세우는 비용을 지불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내가 쓰러지지 않을 곳을 찾아야만 했다. 몸이 감당하지 못하는 일을 정신력으로 버티라는 말은 나에게 살인 공모와 같았다.

나는 나의 취약함을 안고 다시 길을 나섰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야 하는 삶. 비록 기민하게 반응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 발로 서 있을 수 있는 무대를 찾는 것. 그것이 기립성 저혈압이라는 지독한 동반자와 함께 살아가는 1급수 인간의 고달픈 생존 전략이었다. 나는 이제 사다리 위에서 흔들리지 않아도 되는, 내 속도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자리를 꿈꾸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허리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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