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이 무거워 입술을 닫았던 어린 시절의 비밀
믿기 힘든 이야기겠지만, 나는 어린 시절 집 밖에서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것은 '실어증'이라 불리는 증상이었을지도 모르고, 지독한 수줍음이 빚어낸 방어기제였을지도 모른다. 학교라는 낯선 공간에 던져진 소년에게 세상은 너무나 시끄럽고 거칠었으며, 내가 내뱉은 한 마디가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가늠하는 것조차 공포였다. 그래서 나는 침묵을 선택했다. 그 결과, 학교에서 내 별명은 ‘벙어리’가 되었다.
부모님은 내 침묵을 병으로 여겼다. 나를 언어치료사에게 데려갔고, 그 사실은 어린 나에게 감당하기 힘든 수치심을 안겨주었다. “나에게는 문제가 없다. 단지 말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라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역설적이게도 그 말을 하기 위해서는 입을 열어야만 했다. 어느 날은 그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달리는 차도로 몸을 던진 적도 있었다. 빨간불에 건너는 나를 보며 운전자들은 경적조차 울리지 않았다. 그들의 온순한 배려가 오히려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내가 얼마나 죽고 싶어 하는지조차 모른 채, 그저 ‘이상한 아이’가 지나가길 기다려주었을 뿐이다.
성인이 되어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너 그때 왜 그렇게 말을 안 했어?” 나는 수줍음이 많아서 그랬다고 에둘러 답했지만, 사실 나조차 그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나는 일종의 기묘한 ‘함정’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처음이 가장 어렵다. 한 번 말을 하지 않기 시작하자, 말을 하지 않는 상태 자체가 나의 강력한 정체성이 되어버렸다. 내가 조금만 바스락거려도 반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제가 입을 열면 모두가 놀랄 거야.”라는 압박감은 내 입술에 납덩이를 매달았다. 역설적이게도 존재감 없는 소년에게 ‘말하지 않는 아이’라는 타이틀은 무리 안에서 내가 뭐라도 되었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사람들의 관심은 두려웠지만, 동시에 그 시선이 나를 특별하게 만든다는 착각이 나를 침묵의 감옥 속에 더 깊이 가두었다.
언어치료는 두어 번 만에 끝났다. 치료사는 내가 말하기에 아무런 신체적 결함이 없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문제는 마음이었다. 나는 타인의 과도한 관심에 질식하고 있었다. 만약 그때 아무도 나를 벙어리라 부르지 않고, 아무도 내 입술을 주목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나는 조금 더 일찍 평범하게 말하는 아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무관심이 누군가를 바꾸는 가장 강력한 처방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어른들은 알지 못했다.
어린 시절 벙어리로 살았던 기억은 지금의 나에게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나는 여전히 새로운 무리에 들어가는 것이 두렵고, 타인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리는 순간 숨이 막히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그 침묵의 세월 덕분에 얻은 것도 있다. 말을 아끼는 동안 나는 타인의 표정과 목소리의 결을 읽는 법을 배웠다.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는 문장들을 마음속으로 수천 번씩 고쳐 쓰며,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글을 쓰는 인간’으로 길러지고 있었다.
인생은 유기체다. 열 살 소년의 침묵은 서른 살 청년의 문장이 되어 터져 나오고 있다. 그때 뱉지 못한 말들이 고이고 고여, 이제는 글이라는 까만 피가 되어 종이 위를 흐른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벙어리가 아니다. 다만, 말의 허망함을 알기에 침묵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관심이 무거워 입을 닫았던 소년은 이제 스스로 무대 위에 올라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간다. 타인의 시선은 여전히 따갑지만, 이제는 그 시선을 견디며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들을 하나씩 꺼내 놓으려 한다. 그것이 나를 ‘벙어리’라 불렀던 세상에 보내는, 가장 길고도 정중한 나의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