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소설가를 꿈꾸는 아마추어의 변명

“프로는 영감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말의 무게

by 한톨

나는 소설가를 꿈꾼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 자체를 바래왔을 뿐이다. 이십 대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소설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맡겼다. “나는 언젠가 소설을 쓸 거야”라는 선언은 그 자체로 달콤한 도피처가 되어주었으나, 정작 내 손끝에서 태어난 문장들은 공모전 심사 소감의 끝자락조차 닿지 못하고 사라졌다.

머릿속에서 소설을 짤 때 나는 언제나 천재였다. 인물들은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였고, 사건은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갔다. 하지만 막상 모니터 앞에 앉아 하얀 커서와 마주하면 이야기는 약속이라도 한 듯 멈춰 섰다. 상상력의 우물은 바닥을 드러냈고, 나는 메마른 바닥을 긁어대는 둔탁한 소음만을 견뎌야 했다. 그때마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어느 유명한 소설가의 일갈이었다. “프로 소설가는 영감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책상에 앉아 정해진 분량을 써 내려간다고 했다. 날씨가 어떻든, 기분이 어떻든 상관없이 기계처럼 문장을 생산해내는 일. 그것이 프로의 세계다. 그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나는 지독한 아마추어였다. 나는 늘 ‘기분’이 나아지기를 기다렸고, ‘환경’이 갖춰지기를 소망했으며, ‘영감’이라는 손님이 예고 없이 찾아오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영감은 게으른 자의 문을 두드리지 않았고, 나는 결국 쓰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쓰고 싶어 하는 상태’를 즐기는 사람에 가까워졌다.


내가 소설 쓰기를 주저했던 진짜 이유는 아마도 불확실함에 대한 공포였을 것이다. 소설가로 성공할 확률, 그리고 성공한다 해도 그것으로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계산기를 두드릴 때마다 내 안의 열정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나는 겁이 많았다. 내 모든 것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능 없음’이라는 판정표를 받게 될까 봐, 차라리 시작하지 않음으로써 내 재능을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싶어 했다.

“취미로 소설을 씁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나 자신을 진심으로 증오하게 될 것 같았다. 나에게 소설은 취미가 아니라 구원이어야 했고, 유일한 돌파구여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 구원을 위해 매일 책상에 앉는 성실함은 갖추지 못했다. 꿈이 커질수록 몸은 무거워졌고 결국 발가락조차 움직이지 못할 지경에 다다랐다. 그 간극 사이에서 나는 ‘가능성’이라는 진통제를 맞으며 하루하루를 견뎠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마음이 편해지면 더 잘 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또한 나를 속이는 인생의 거짓말이었다. 프로의 세계는 결코 편안한 안락의자 위에서 펼쳐지지 않는다. 소설가가 된다는 것은 상상의 나래를 펴는 우아한 행위가 아니라, 아침마다 무거운 몸뚱이를 책상 앞에 앉히고 한 줄의 문장을 짜내기 위해 자아와 투쟁하는 노동에 가깝다.

나는 여전히 아마추어다. 여전히 망설이고, 여전히 불확실함 앞에서 뒷걸음질 친다. 하지만 이제는 영감을 기다리며 허송세월하는 짓은 그만두려 한다. 소설 쓰기가 나를 밥 먹여주지 못할지라도, 내가 글을 쓸 때만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거창한 걸작을 꿈꾸기보다, 오늘 하루 내가 정한 문장의 개수를 채우는 것. 그 사소하고도 위대한 반복만이 나를 ‘꿈꾸는 자’에서 ‘쓰는 자’로 건너가게 해줄 유일한 다리임을, 나는 이제야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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