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20대 후반이라는 강철 무지개

차갑고 시리지만 가장 단단하게 빛나는 절정의 시간

by 한톨

이육사 시인은 <절정>에서 겨울을 일컬어 ‘강철로 된 무지개’라고 노래했다. 서른을 목전에 둔 20대 후반의 끝자락에 서서 나는 그 문장을 입안에 넣고 오랫동안 굴려본다. 강철과 무지개. 결코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은 차가운 금속성과 덧없는 빛의 만남은,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이 기묘한 시절을 설명하기에 더없이 적절한 비유였다.

20대 후반은 잔인한 계절이다. 젊음의 정점에 서 있다는 화려한 수사 뒤에는, 이제 곧 ‘가능성’이라는 외투를 벗고 ‘결과’라는 맨몸을 드러내야 한다는 서늘한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10대가 끝날 무렵의 무지개가 솜사탕처럼 폭신한 구름의 질감이었다면, 지금 내가 마주한 무지개는 손을 대면 베일 듯 날카롭고 단단한 강철의 물성을 띠고 있다. 잡을 수 없는 신기루인 줄 알면서도 그 견고한 무게감에 짓눌려 숨이 가쁜 시간. 그것이 나의 현재다.


나는 이십 대 내내 나를 바꾸기 위해 투쟁해왔다. 1급수의 맑음을 유지하면서도 세상이라는 탁류에 섞일 수 있는 마법 같은 변신을 꿈꿨다. 하지만 서른이 가까워진 지금, 내가 깨달은 진실은 나는 여전히 나라는 사실이다. 헛된 믿음은 나를 기만했고, 남들과 보폭을 맞추지 못하는 나의 절름발이 걸음은 고쳐지지 않았다. 이제 젊음이 저물어가고 있다는 아슬한 예감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렇다면 이 강철 무지개 아래서 나는 패배한 것일까? 아니, 역설적이게도 나는 지금이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다. 강철이 차갑다는 것은 그만큼 밀도가 높다는 뜻이며, 무지개가 시리다는 것은 그만큼 순수한 빛을 품고 있다는 증거다. 20대 초반의 내가 타인이 찍어준 ‘부적합’ 낙인에 울었다면, 지금의 나는 그 낙인조차 나의 고유한 무늬로 받아들일 만큼 단단해졌다.

이십 대를 돌아보면 그것은 거대한 회피의 역사였다. 학교를 회피하고, 군대를 회피하고, 책임을 회피하며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기를 갈망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음을 안다. 내 길은 내가 정해야 하며, 그 길 위에서 쓰러지는 것조차 나의 권리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강철 무지개는 나에게 말한다. 인생은 구름 위를 걷는 낭만이 아니라, 차가운 금속 위를 맨발로 걷는 고통 속에서도 빛을 발견하는 의지라고.

아직 서른이 되지 않은 놈이 죽는 소리를 한다고 비웃는 어른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이 불안과 공허는 죽음보다 선명하고, 삶보다 무겁다. 나는 이 시절을 호들갑 떨며 지나가지 않기로 했다. 차갑고 시린 이 강철 무지개를 온몸으로 껴안으며, 내게 남은 젊음의 시간을 불태워보려 한다. 노력하겠다는 말로 나를 속이지 않고, 정말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나가는 것. 싫어하는 사람을 미워하되 그 미움에 파묻히지 않는 교양을 갖추는 것.


인간은 태어난 순간 죽음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이라지만, 그 화살이 그리는 궤적의 아름다움은 오로지 쏘아 올린 자의 몫이다. 나의 20대는 저물어가고 있지만, 그 노을은 어느 때보다 짙은 강철색으로 빛나고 있다. 나는 이제 무지개를 잡으려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그저 내 발밑의 강철 같은 현실을 딛고, 내가 정한 물길을 따라 묵묵히 흘러갈 뿐이다. 이 단단한 계절이 지나면, 나는 조금 더 깊은 물속에서도 숨 쉴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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