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작가님 혹은 인턴

불확실한 호칭 속에서 비로소 찾아낸 나의 진짜 이름

by 한톨

퇴사 후 62일간의 기록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무렵, 나는 다시 사회의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 나를 불러준 곳에서 사람들은 나를 ‘인턴’이라 불렀다. 서른을 코앞에 둔 나이에 다시 시작된 막내 생활. 그런데 이 낯선 사무실에서 예상치 못한 호칭 하나가 내 삶에 끼어들었다. 부서의 팀장님이 나를 “작가님”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팀장님은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데 서툴다고 했다. 그분에게 내 이름은 인턴이라는 직함보다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로 먼저 각인된 듯했다. 내가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올리고, 글쓰기를 삶의 중심에 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나눈 뒤부터 팀장님은 기분이 좋을 때면 나를 “작가님”이라 불렀다. 물론 상황이 여의치 않거나 공적인 업무를 지시할 때는 다시 “인턴”으로 돌아왔지만, 그 변덕스러운 호칭의 전환이 나에게는 묘한 해방감을 주었다.

처음에는 그 부름이 낯부끄러웠다. 등단한 적도, 책을 낸 적도 없는 나에게 작가라는 수식어는 과분한 옷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호칭은 내가 진짜 듣고 싶었던 이름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팀장님은 그저 부르기 편해서, 혹은 나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가볍게 던진 말이었을지 모르나, 그 말은 복사기 앞에서 종이를 추리고 엑셀 시트와 씨름하는 나의 낮 시간에 작은 균열을 냈다.


사무실 안에서 나는 철저히 조직의 말단이자 임시 부품인 ‘인턴’이었으나 팀장님이 던진 “작가님”이라는 한마디는 나를 다시 ‘쓰는 인간’으로 일깨웠다. 그 호칭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내가 겪는 사소한 업무상의 피로를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상사에게 꾸중을 듣거나 실수로 자괴감이 밀려올 때도, 나는 속으로 조용히 뇌까렸다. ‘좋아, 작가로서 이 상황을 어떻게 기록할지 고민해보자.’

작가님과 인턴. 이 극단적인 두 호칭 사이의 긴장감은 나를 나눠놓기보단 오히려 단단하게 묶어놨다. 내가 나를 작가라고 정의하고, 또 타인이 나를 그렇게 불러주기 시작하자 세상은 더 이상 나를 함부로 평가하는 심판대가 아니었다. 대신 기록해야 할 거대한 전시장으로 변모했다. 인턴이라는 신분은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고, 작가님이라는 호칭은 나를 당당하게 만들었다.

나는 여전히 ‘작가’가 되기를 꿈꾼다. 하지만 이제는 그 꿈이 나를 가난하게 만들까 봐 두려워 숨지 않는다. 팀장님이 나를 작가님이라 불러준 덕분에, 나는 비로소 내 안의 물결을 인정하게 되었다. 1급수의 예민함은 작가로서의 감각을 날카롭게 유지해주고, 인턴으로서의 투박한 일상은 내가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게 한다.

불확실한 호칭 속에서 방황하던 시간은 끝났다. 이름표는 남이 달아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가슴에 품은 열망을 누군가 발견해줄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오늘 인턴으로 출근해 세상을 배우고, 누군가가 불러주는 작가님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문장을 쓰기 위해 밤의 책상으로 돌아온다. 이 불완전하고도 아름다운 호칭의 변주곡이야말로, 1급수 인간이 사회라는 거친 파도를 타는 가장 우아한 방식임을 나는 이제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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