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운명은 우연의 옷을 입고 온다

새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옛 직장을 향한 무심한 시선

by 한톨

가끔 운명은 하찮은 옷을 입고 나타난다. 대단한 서사나 장엄한 음악 없이, 그저 기가 막힌 우연의 일치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 곁을 서성인다. 퇴사 후 60여 일이 지나 새롭게 튼 자리가 하필이면 이전 직장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건너편 건물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그 운명의 하찮음에 소리없이 웃었다.


지금 내 자리에 앉아 고개를 들면, 불과 두 달 전까지 내가 머물렀던 사무실이 보인다. 정확히 4층. 까만 모니터들이 줄지어 있고 짙은 푸른색 창문이 나 있는 그곳. 한때는 내 세계의 일부였고, 나를 질식하게 만들었던 그 공간이 이제는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프레임 안에 갇혀 있다. 아침마다 전쟁터로 향하듯 비장하게 들어섰던 그 건물을, 이제는 창밖의 풍경처럼 무심하게 바라보게 된 것이다.

이전 직장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죽을 만큼 괴로워했던 그 공간도, 멀리서 바라보면 그저 평범한 도심의 건물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안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거리감이 생기자, 비로소 그곳에서 겪었던 고통의 크기를 잴 수 있게 됐다. 내가 없어도 그곳의 모니터는 여전히 켜져 있고, 사람들은 여전히 분주하다. 그 하찮고도 당연한 진실이 나를 자유롭게 만든다.


우연히 본 뉴스 한 줄에 자퇴를 결심하고, 우연히 만난 팀장의 부름에 다시 작가라는 꿈을 꾸게 된 것처럼, 인생은 정교하게 짜인 계획표가 아니라 수많은 우연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거대한 지층이다.

운명을 하찮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가볍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흐름이, 아주 사소한 일상의 틈새를 통해 우리를 찾아오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앉은 자리에서 옛 사무실이 보이는 것은, 이제 그곳의 기억으로부터 완전히 작별해도 좋다는 운명의 무심한 허락일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흘렸던 눈물과 자괴감은 저 푸른 창문 너머에 남겨두고, 나는 이제 내 앞에 놓인 새로운 모니터를 응시한다.

특별한 일을 특별하게 맞이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특별하지 않은 우연 속에서 나만의 의미를 길어 올리는 일이다. 인연이든, 우연이든, 혹은 기가 막힌 운명이든 아무렴 좋다. 나는 이제 창밖의 옛 직장을 향해 조용히 작별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숙여 오늘 내가 써 내려가야 할 문장들에 집중한다. 하찮은 우연들이 모여 내일의 단단한 운명을 만든다는 것을, 나는 이제 이 창가 자리에 앉아 조용히 믿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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