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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성 Apr 21. 2024

글쓰기 연습장 3



적당한 스트레스와 적당한 시간이 글을 쓰게끔 만든다.


나의 머릿속에 어떤 글이 있다. 머릿속에서 어떤 인물이 소리치고 있다. 

그 인물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인물은 나를 떠나고 말 것이다.


방향을 잡아야겠다. 어디로 가든 어디든 갈 터이니.

내가 타고 있는 배는 어딘가로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다. 

나는 시간이란 배를 타고 나아가는 한 명의 인간이다.


사실 나는 바쁜 게 더 좋다. 나를 잊을 수 있을 만큼 일하는 걸 좋아한다.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생각하는 건,

인간만이 저지를 수 있는 어리석음이 아닌가 싶다. 


할 수 있다는 말로 할 수 있는 건 없다. 자신감이 능력은 아니다.

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나의 글쓰기는 한 단계 발전했다.

왜냐면 독자를 '드디어' 고려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문학적 배설을 하고 있었다.

독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위해서만 썼었다.


‘AND’ 공식 : 특징 하나만 놓고 보면 별 볼일 없으나

그것들을 엮고 또 엮으면 아주 특별한 게 나온다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은 공존할 수 없다. 삶과 죽음이 공존할 수 없듯이.


나는 나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그렇다고 다른 누군가 되고 싶진 않다.

나는 나로 살 때가 가장 기쁘다. 그런데 나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때가 있다.


남 눈치 보며 불행하게 사느니 내가 바라는 대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낫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것이라는, 좋아해야 한다는 사고방식만 버려도,

훨씬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나는 ‘모든 인간’이란 명제에 걸맞은 서술어는 단 두 가지뿐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죽는다, 다른 하나는 지구에 산다.

그거 말곤 모든 인간을 서술할 수 있는 말은 없다.


나는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다. 인정도 못 받았고,

세상에 홀로 남았다고 여기며 자랐다.

그러나 그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말하기 어렵고, 두려웠기 때문이다.


내가 워낙 오래 우울증을 앓은 탓인지는 몰라도,

나는 우울증이란 말이 갖는 무게를 못 느낀다.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 우울하다거나, 정신병이 있다거나, 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가능한 한 숨기려고 하는 것 같다.


영혼이라는 것은, 가지고 태어나지만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불편함은 용기 앞에서 모습을 감춘다. 그들은 겁쟁이다.


나는 부모님의 실패작이다. 그렇다고 내가 실패한 건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에 내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자유란, 세상으로부터 구속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구속하지 않는 것이다.


자살하는 인간은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특이한 생물이다.

인간과 동물을 나누는 것은 특이하리만치 커다란 뇌,

전전두피질 따위가 아니라 자살하는 습성이 아닐까.


타인의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는 것은 불행의 시작이고,

타인을 나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불행의 끝이다.

비교하기, 불평하기, 그것은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가난한 남자를 사랑하는 일은 아름답지 못한 여자를 사랑하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사랑이란 감정은 몹시 강력해서,

한 인간의 정체성이나 신념, 인생 따위를 모조리 바꾸어버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사랑을 원하고, 나 또한 인간이기에 사랑을 바라고 있다. 


인간은 아주 감정적인 동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을 잘 다루어야 한다.

타인의 감정은 물론이고, 특히 나 자신의 감정을 잘 다룰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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