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고양이 세수 중
나는 야행성
겁 많은 고양이
자정이 다가서면 오묘한 자세로 나는 연습을 하지
나는야 행성
두 귀와 수염은 늘 현관 밖으로 열어두고 다른 행성으로 떠날 준비를 하지
반짝이는 눈으론 달빛을 당겨올 거야
자국이 난 벽지와 빈 박스는 나의 스크래쳐
긁고 또 긁어도 자라나는 발톱은 미련 없이 뽑아버리지
높은 곳에서 바닥으로의 연착륙은 기묘한 생존 방식
배가 불러지면 동그랗게 몸을 말아 잠이 들기도 해
꿈을 꾸다가 별별의 별들과 마주치는 건 아주 흔한 일
꿈의 깊이만큼 잠꼬대를 하고
잠결에도 내 말을 하는 건 말 안해줘도 다 알아들어
예쁘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면 꼬리를 살랑거려주는 것, 나의 예의
눈을 뜬다
고양이 자세를 한 후 몇 번 뒹굴어주 는것이 내 하루의 시작법
혓바닥으로 발가락 사이사이와 하얀 발등과 목덜미를 새하얗게 닦는 일을
고양이 세수라고 사람들은 말하지
눈빛을 주고받으며 밥을 먹는 건 아주 기본적인 일
물그릇을 엎어버리는 건 나만의 주특기
거짓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수 없는 눈동자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가슴 깊숙한 곳에 숨겨진 우울의 뭉치를 토해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어
묘사니 구조니 기타 등등의 수사법은 모르지만
꼬리로 물음표 만드는 건 누워서 떡 먹는일,
하지만 아무 때나 물음표를 만들지는 않지
고양이는 지금 고양이 세수 중
-시집 날아라 캥거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