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하는 여자
박숙경
맞은편 유리창 속 나 같은 여자 하나
구겨진 종이 가방 무릎 사이 세워놓고
안뜨기 바깥뜨기로
남은 오후 짜 늘이네
실마리 움켜잡고 내달리는 두 개의 손
바늘 끝 시선까지 한 코씩 엮어내면
상상을 더하지 않아도
이미 따뜻한 겨울
살다 보면 가끔씩 그럴 때 있기도 해
덜컹 덜컥 흔들리다 저절로 아귀 맞는
까무룩 졸다 깨보니
한 뼘이나 자란 오후
[2025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2025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소감] 박숙경
겨울 숲길에서 마주한 고마운 소식
혹시라도 당선 소식이 오면 울어야지 먼저 김칫국을 마시며 세웠던 소심한 계획도 건망증 때문에 잊어버렸지만 작아서 더 여린 사물들의 말을 받아쓸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다.
우체국과 미인개엘 들렀다가 마트에서 저녁 찬거리를 사고 나니 그제야 조기(弔旗)와 근조화환 값을 송금해야 된다는 생각이 났다. 집으로 와서 장 본걸 정리해놓고 다시 ATM기가 있는 곳으로 가서 송금을 한 후 나온 김에 숲길을 걷는 중이었다. 동지를 지나 제법 겨울다운 날씨였으므로 중무장을 한 상태였고 어수선한 시절이라 모르는 번호로 뜨는 전화는 잘 받지를 않는데 '064-' 생소한 번호였지만 왠지 받아보고 싶었다. 한라일보라는 말이 눌러쓴 모자를 뚫고 귓불에 닿는 순간 잠시 멍했다.
십여 년의 습작 후 2015년에 자유시 등단이 있었고 2019년부터 갑자기 시조 생각이 났다.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읽은 시조가 전부여서 막막했지만 정완영 시조작법을 읽으면서 율을 익혔고 율격에 맞춰 한 수 두 수 써보는 일이 꽤나 재미가 있었다.
안팎으로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친 한 해의 끝자락, 조여만 드는 숨통을 트이게 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한라일보에 감사드리며 기뻐해준 가족들과 저와 제 시를 사랑해 주시는 분들께 깊숙이 숨겨놓은 사랑의 마음을 꺼내 전하며 자주 잊어버려 고생이 많은 나의 손과 발을 토닥여 본다. 가끔이라는 말 보다 자주라는 말이 자주 좋아지는 성탄절 이틀 전날의 일이다.
▷1962년 대구 군위 출생
[2025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고성기, 김희운, 홍경희 시조시인
평이한 소재에 담긴 따스하고 깊은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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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뜨개질이라는 평이한 소재를 통해 깊이 있는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뜨개질하는 여자'는 뜨개질 과정에서 따뜻함과 삶의 소소한 순간을 포착해내었다. 또한 복잡한 언어나 화려한 수사 대신, 섬세한 감수성과 간결한 표현을 통해 구체적이고 상징적인 이미지를 돋보이도록 했으며, 리듬감 있는 구성으로 공감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판단되어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앞으로도 실과 바늘을 사용해 여러 가지 형태를 만들어내는 뜨개질처럼 간결하면서도 독창적인 시조 작품들이 다양하게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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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하는 여자 덕분일까 대구문화예술진흥원 발간사업에 선정 되어 세 권의 시집 이후 첫 시조집 발간을 앞두고 있다. 첫 마음이라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되지만 기다리는 마음 또한 크다. 모두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