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세 Mar 06. 2023

꺾이지 않는 강인함으로 시대를 노래한 시인

인물 탐구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시는 세계다. 하나의 세계를 형상한다. 그래서 시는 어렵고, 직관적이다. 장미꽃을 사랑했으나 장미가시에 찔려 죽은 시인, 연상의 루 살로메를 사랑하여 예술적 에너지를 취했던 시인, 사춘기 예민한 감성에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보고 빠져들었던 시인. 내가 릴케에 대해 갖고 있던 인상이다.


평생 죽음을 고민했다. 그의 시는 죽음을 고민했던 그의 인생이 녹아 있다. 10년 동안 죽음을 사유한 결정체가 <두이노의 비가>이다. 죽음을 맞이하러 달려가는 인간의 삶을 긍정하고 삶 가운데로 죽음을 불러들임으로 인생의 의미를 찾았다. 그의 시는 하이데거의 사상과 닮아 있다. 죽음은 위대하고 확실한 실존의 조건이었고, 죽음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유를 얻는 것이다. 한 소녀의 죽음은 릴케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 죽음의 각성을 통해 릴케는 존재의 유한함을 극복하고 자아를 확장한다. 릴케는 종교성을 체득하고 있었다. 괴테 사후 독일의 정신적 공백을 아쉬워했던 릴케는 메테를 링크를 통해 그 공백을 채우고자 했다. 그리고 루 살로메는 릴케의 정신에 기름을 부었다.


릴케는 여행을 좋아했다. 사상과 문화가 다른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자신의 세계를 넓혀갔다. 특히 ‘바다'를 좋아했다. 자연을 통해 어머니, 종교, 예술 등 원초적 자아에 눈을 떴다. 러시아의 대초원은 그를 감동시켰다. 26세에 화가 클라라와 결혼했고 둘은  서로의 고독을 존중해 별거한다. 로댕은 릴케의 스승이다. 예술에 관해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릴케의 예술은 신을 조각하는 과정이었다. 신의 정신이 사물에 깃들어 있으니 사물에게서 신의 존재를 깨닫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흔히 릴케는 형상의 시인으로 불린다. 사물에 존재하는 형상을 예리하게 꿰뚫어 본질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는 마침내 사명을 지각한다. 모든 사물 속에 갇혀있는 형상을 놓아주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생각했다. 릴케는 러시아의 양자이며 독일의 아들이며 프랑스의 제자였다.


사람은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육체로 한 번은 정신으로. 릴케는 파리에서 가난과 죽음, 질병을 온몸으로 체험한다. 그리고 죽음의 의미를 직관한다. 그의 기도다. “주여 각 사람에게 무르익은 죽음을 주소서.” 릴케가 보았을 때 죽음은 두 가지가 있었다. 설익은 죽음과 무르익은 죽음이다. 설익은 죽음은 죽음의 의미가 너무 가볍다. 흔하고 일상적이어서 죽는 당사자에게도 아무 의미 없는 값싼 죽음이다. 죽음은 무르익은 죽음이어야 한다. 공포를 이겨내고 슬픔을 극복한 죽음, 진리를 깨달은 죽음이다. 죽어서 사는 사람에게는 매일매일이 죽음이다. 자연만이 아름다우며 자연만이 스승이다. <말테의 수기>에서 말테는 비참한 밑바닥에서 행복의 절정에 도달했다. 35세 이전의 시가 초월적 영감에 의존했다면 35세 이후의 시는 내재적 영감에서 흘러나온다.


<두이노의 비가>는 삶을 꿰뚫어서 죽음 속에 자기 자리를 마련했고, 죽음을 포용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자 노력한 결과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주체의 독백이 중요하다 불안 속에서 확실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인생이다. 실존이 원인이 되어 존재의 세계가 이루어진다. 그것은 절대자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작은 죽음은 육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큰 죽음은 하나의 변신이다 자기 죽음이 무르익기까지 인간은 죽음은 견뎌내야 한다. 매일 죽음을 버티면서 죽어가는 과정이 예술창작이다. 자연적인 시간관이 실존적 시간관으로 바뀔 때 죽음에서 해방된다. 릴케는 언제나 변신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려고 한다. 시인이 시를 짓는 것이 아니라 시가 시를 짓는다. 아름다움은 존재가 드러날 때 아름다움이 된다. 미(美)는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까닭 없이 꽃이 필 때 그것이 미(美)다. 목적 없는 합목적성 그것이 아름다움이다


 사유의 결정체가 시다. 하나의 시를 창조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정신적 고통이 시인의 내면에서 일어난다. 가슴으로 쓴 시는 그래야 한다. 느낀 만큼, 사유의 깊이만큼 시인의 시가 보인다. 릴케의 삶을 이해할 때 그의 시가 보인다. 부드러운 사랑의 시가 아니다. 죽음과의 투쟁 속에 태어난 아름다운 승리의 시다. 체험과 경험은 또한 얼마나 중요한가! 시인의 감수성은 온몸에 충만했다. 대자연과 태양과 일상을 시창작의 자양분으로 받아들였다. <말테의 수기>가 그렇게 태어났다. 파리에서의 체험이 잘 살아있다. 진심으로 만난 세상이 언어가 되어 시로 변했다. 대충 타협하지 않는다. 나약한 정신은 예술을 창조할 수 없다. 지지 않는 강인함이 있다 꺾이지 않는 집요함이 필요하다. 시대와 충돌하지만 시대의 아픔가운데로  몸을 던져 스스로 시대의 아픔이 되기도 한다. 고독은 어떤가? 시가 태어나는 어머니의 자궁이 아닌가?  사랑했다면 사랑의 시가, 버림받았다면 역설적으로 고통의 환희를 표현한 시가 탄생한다. 시인은 자신의 인생을 정직하게 언어로 그려낸다. 자신의 삶을 표현할 또 다른 방법을 소유한다는 것은 축복이다. 행운이다. 그것은 실존의 강력한 증거이다. 릴케를 통해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지지 않는 강인함을 배운다.


그는 꺾이지 않는 강인함으로 자기 시대와 인생을 노래했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