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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 Mar 03. 2023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독서일기 <달과 6펜스> 서머셋 모옴

1

잘 나가던 증권회사 직원이 어느 날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이혼을 선언한다. 모두 바람난 남자를 탓한다. 아무도 그 남자가 이혼한 진짜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한평생을 살면서 인간이 자신의 참 자아를 실현하며 살고 있는가를 물어본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고 일과 가정을 중심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면 그것이 행복이지 않겠냐고 말한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행복의 기준들이 나의 행복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 평범한 일상이 무의미하고 견딜 수 없어 자신만의 인생을 설계한다. 적어도 그 사람의 내면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자신만의 강력한 내적 충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그림을 그리겠다고 한다. 꿈틀거리며 탈출을 꿈꾸던 예술적 충동이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본능으로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강력한 삶의 에너지는 내면에서 솟구쳐 나오는 충동들이다. 그것은 육체적 욕망과는 다른 차원의 욕망이다. 자연스럽게 생겨나 마침내 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고 영혼을 사로잡는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예술가에게 평범한 일상은 일종의 저주이다. 무의미하고 권태로우며 죽음과도 같다. 예술적 충동은 호흡을 거칠게 만들고 쾌락을 동반하며 초인적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먹고 마신 모든 것들은 창조를 위한 에너지로 승화되어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한다. 주인공에게 예술은 삶의 기쁨이자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2

가정의 행복이나 부모로서의 책임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소중한 가치이다. 그러나 예술가에게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기준이 작용하기도 한다. 도덕은 그에게 벗어던져야 할 허물이자 굴레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비난한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예술의 완성이라는 내적 기준이 든든하게 자리 잡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좋은 직장, 안락한 집, 멋진 자동차와 같은 물질적 가치들은 예술가에게 크게 고려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정절, 도덕과 같은 윤리는 예술가를 옭아매는 굴레가 될 수 있다. 나는 지금 그저 그렇고 예술을 멋진 삶을 위한 장식품으로 생각하는 평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완전히 예술적 충동에 사로잡혀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진짜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가 다다른 경지는 범인들의 차원을 뛰어넘는 곳에 있다. 사람들은 그를 이해할 수 없다. 서로 다른 차원에 살고 있는 것이다. 보통사람들은 광기와 열정에 사로잡힌 예술가의 기행을 이해할 수 없어 비난하지만 완성된 그의 작품 앞에서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예술은 가치 있는 것이다.

 

3

완벽한 미의 이데아를 향한 치열한 노력이 예술가의 미적 충동의 본질이다. 절대를 향한 도전이다. 무엇인가에 미쳐있고 몰두해 있는 사람은 행복을 느낀다. 가난이나 질병과 같이 사람들이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요소들마저 창조의 과정에서는 오히려 에너지가 된다. 행복과 불행의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다. 하나의 목적, 하나의 충동이 예술가를 사로잡는다. 자연은 때로 예술창조를 위한 좋은 활력소가 된다. 주인공은 타히티에서 생을 마감한다. 타히티에서의 생활은 지극히 단순하고 원초적이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예술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많은 사람들은 욕망의 충족을 통해 행복을 즐기려고 한다. 그러나 욕망의 충족만을 위한 삶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한다. 욕망의 좌절 또한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욕망의 충족을 위한 행동을 멈출 수는 없다. 다들 자기만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기에 각자의 깨달음이 필요하다. <달과 6펜스>는 예술의 본질을 통해 인간 삶의 본질에 대해 근원적으로 묻고 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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