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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 Aug 04. 2023

그리스 비극과 데미안 그리고 검찰공화국

그리스인이 준 선물


지중해 연안의 작은 도시국가 폴리스는 서양문명의 근원이다. 수많은 문명 중 왜 그리스 문명이 서양문명의 근원이 되었을까? 본능과 이성의 대결, 힘과 논리의 대결을 상징하는 두 개의 라이벌 도시국가가 있었다.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싸웠다. 결과는 힘을 가진 스파르타가 승리자였다. 그러나 영원한 승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아테네가 남긴 정신적 유산이 훨씬 더 오래 살아남아 서양문명을 근원을 형성한다. 그것이 바로 합리주의이다. 합리주의가 낳은 정치제도가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가 가장 이상적인 정치제도라는 데에는 많은 이견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절대가치를 실현하는 데 가장 가깝게 접근한 정치제도인 것은 분명하다. 이성과 합리, 그리고 그의 제도적 실현체인 민주주의는 그리스 문명이 인류에게 준 큰 선물이다.


나는 여기에 덧붙여 그리스인이 준 또 다른 선물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비극이다. 디오니소스축제는 그리스인의 추수감사절이다. 풍성한 수확을 안겨준 신에게 감사하고 즐기는 그들의 잔치이다. 이 잔치에서 해마다 비극 경연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들이 우리가 잘 아는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같은 작가들이다. 비극이 가장 활발하게 경연되었던 시기가 그리스의 전성기였던 페리클레스집권기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신기하다. 부와 문화력, 군사력이 절정에 다다르고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되었던 시기에 그리스인들은 비극을 노래하고 즐겼다. 비극은 무엇인가? 슬픔이고 아픔이고 고통이다. 그런데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전성기에 환락과 퇴폐에 빠진 것이 아니고 비극을 노래했다. 비극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리스인들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노래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은 무엇인가 인생에서 가장 피할 수 없는 슬픔은 무엇인가? 죽음이다.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 놓인 인간은 과연 자신이 직면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까? 고통에 직면한 인간의 대응을 통해 인간정신의 위대함을 배우고자 했다. 정신의 크기를 견주었다. 이건 매우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인생의 통찰이다.  사람들은 인간의 삶이 마냥 행복하기만을 바라지만 그건 주관적 희망일 뿐이다. 삶이란 비극과 희극이 교차한다. 톨스토이는 오히려 인생의 본질은 고통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고통을 견뎌내고 그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가운데 참다운 인생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선과 악의 공존 압락사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한다. 개인이 최선이라고 판단하고 한 그 선택은 개인을 환희, 또는 좌절로 이끈다. 어리석든 지혜롭든 선택을 해야 하고 실패를 피할 수 없다. 한 개인은 연속된 선택의 과정을 통해 성숙에 이른다.  잘못된 선택은 짧게는 개인을 고통으로 몰아가지만 길게 보면 성장의 큰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압락사스는 새가 알을 깨고 날아가서 다다르고자 하는 신이다. 그러나 그 신은 선과 악을 동시에 품고 있는 신이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선과 악이 언제나 상식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때로 지극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선택의 기준이 존재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악이지만 나에게는 그게 최상의 선택일 수 있다. 인간은 언제나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실수와 잘못과 지혜로운 선택을 통해 인간은 지혜를 얻는다. 개인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집단이나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국가도 예외일 수는 없다. 소설 <데미안>의 후반부에서 작가 헤르만 헤세는 인류의 잘못된 선택을 이야기한다. 세계 제1차 세계대전이다. 그것이 인류전체에게 큰 깨달음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회적 유전자 밈은 돌고 돈다.


인간이 쌓아놓은 지혜의 축적물은 밈이 되어 다음 세대에 전달된다. 그러나 축적된 지혜가 아무 대가 없이 자연스럽게 인간 개개인에게 상속되는 것은 아니다. 개체는 처절한 학습을 통해 그것을 몸에 각인시켜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진리일지라도 개인이 체험하지 못하면 책 속의 활자로만 남아 있는 죽은 진리인 것이다. 앞선 세대의 소중한 체험을 다음 세대에게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 것이라는 착각이 그래서 나온다. 압락사스로의 여행을 거치지 않고서는 개개인이 지혜로워질 방법이 없다. 국가도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완성된 줄 알았던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상황이 그래서 벌어진다. 너무나도 당연히 옳다고 여기던 가치가 쉽게 허물어진다. 왜? 과거의 어둠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기 때문에. 그래서 반대의 도전은 진리를 확고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 그렇게 쉽게 후퇴할 가치가 아님에도 쉽게 무너지는 것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확고한 진리로 아직 내재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파편화된 개인, 물질적 욕망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탐욕의 시대,  지나친 빈부격차 등.


헤겔이 말한 역사의 진보를 나는 믿지 않는다. 돌고 돌뿐,  러시아, 중국,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을 보라. 우경화가 대세이다. 민주주의가 위기이다. 이것 또한 인류에게 닥친 비극이며 압락사스로 가는 과정이다. 검찰공화국은 일시적이다 영원한 고통은 없다. 그리고 고통을 마주한 사람들에게 묻는다. 너는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것이며 어떻게 견뎌낼 것이며 모든 상황이 끝난 다음에 어떤 교훈을 가슴에 새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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