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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 Feb 03. 2023

<반일종족주의>의 허구성

독서일기  <반일 종족주의> 이영훈

이영훈 교수가 쓴 <반일종족주의가> 논란이 되고 있다. 우연히 TV를 보다가 MBC 탐사취재 프로그램 <스트레이트>에서 저자 이영훈이 나와서 취재를 거부하면서 자기 책 읽어봤냐고 기자에게 세 번이나 확인하는 내용을 보게 되었다. 자기 저술에 대한 학문적 자부심이 어마어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책 읽었으면 자기주장이 맞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투의 태도였다. 이영훈의 책은 읽어보지 않았고 앞으로 읽어볼 생각도 없지만 그 책이 지닌 관점 정도는 안다. 크게 두 가지이다. 실증주의와 민족은 허구라는 태도를 저서의 바탕에 깔고 있다. 통계수치를 통해 일제치하 조선경제가 발전했다는 점을 입증하려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한, 일 관계를 바라보는 것은 전근대적이고 미신적인 태도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책의 제목이 <반일 종족주의>인 것이다.



실증주의는 일제가 조선을 점령한 뒤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해서 한국사를 다시 쓰면서 채택한 역사연구의 한 방법이다. 객관적 사료를 가지고 역사를 연구해야 한다는 태도이다. 학문에서의 객관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필요한 태도이다. 그리고 이 실증주의야 말로 한국역사학계를 쥐고 흔들었던 식민사학의 토대가 된다. 실증주의와 대립 점에 있는 역사연구의 방법이 현재주의이다. 현재의 당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 역사를 돌아보는 것이다.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과거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현재주의의 대표적 사례이다. 역사학자 크로체는 이를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 중국의 동북공정도 현재주의적 관점이고 엄밀하게 따지면 일본의 역사왜곡도 극단적인 현재주의이다. 현재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자국에게 불리한 역사를 은폐, 축소, 조작,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자국에게 유리한 역사는 확대, 과장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실증주의적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실증주의는 아무 문제가 없는가? 역사를 객관적으로 본다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사관의 기록 또한 선택과 집중이라는 필터를 거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실증주의의 가면을 쓰고 의도적으로 특정 사료를 집중 선택해서 원하는 바를 주장하거나 증명하려는 시도가 가능해진다.



일본이 입증하려 했던 것은 조선이 정체된 나라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야 자신들의 조선 지배를 정당화할 수 있기에. 이를 입증하기 위해 조선사편수회를 조직, 한국사를 다시 썼다. 35권의 한국사를 집필했는데 이중에 절반 이상이 조선에 집중되었다. 일본이 쓴 <조선사>는 사료중심의 사료집인데 조선의 당파싸움, 후진성 등등을 입증하는 자료들로 가득 채웠다. 이마니시 류라는 역사학자가 중심이 되어 조선사편수회를 이끌었는데 이들이 나중에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의 역사학과를 지도한다. 이마니시 류로부터 사사받은 대표적인 학자가 한국역사학계의 거두 이병도이다. 태생부터 식민사학의 학문적 뿌리를 형성했던 것이다. 이영훈의 책도 다르지 않다. 일제는 연역적 방법으로 한국사를 연구했다. 조선이 정체되었다는 가설아래 이 가설을 입증할 자료를 모으는 것이다. 일제치하의 인구, 소비수준 등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일제가 조선의 발전을 도왔다는 결론을 내는 것은 인과관계가 분명치 않은 연역적 사고일 뿐이다. 어느 문명이 시간이 갈수록 후퇴하고 퇴행하는 과정을 밟아간단 말인가? 독자적으로도 충분히 경제적 성장을 할 수 있었음은 당연하다.



민족의 허구성에 대한 주장도 마찬가지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자신의 저서 <상상의 공동체>에서 한 주장이 이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에게 광범위하게 인용되고 있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인위적으로 주입된 허구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개념이 어느 미래에 없어질지는 몰라도 아직은 아니다. 제국주의의 수탈이 국가단위로 이루어졌고 특히 한반도의 경우 언어와 문화를 수천 년이나 공유하면서 함께 살아왔다. 민족은 여전히 살아있는 실체이다. 더구나 분단된 한반도의 경우 민족은 분명히 실존하는 현실체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엄연히 존재하고 가해의 당사자가 자신의 죄악을 부정하고 있는 현실에서 피해자에게 부질없는 과거에 매달리지 말라고 충고하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모든 학문은 현실의 반영이지만 완전한 반영이 될 수 없다. 자신의 오류와 한계를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노자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도를 도라고 부르면 더 이상 도가 아니다” 살아 있는 현실을 개념이나 사고로 완벽하게 정의하려는 시도는 무모하다. 그럼에도 이론이나 가설이 만들어지면 절대적 진리가 되어 숭배의 대상이 된다. 설령 타당한 내용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부일 따름이다.  따라서 모든 이론이나 이데올로기는 맹신되어서는 안 된다.  


피해자의 수많은 증언과 증거가 남아있음에도 저리 황당한 주장을 대놓고 하는 걸 보면 자기도그마에 빠진 어리석은 지식인이거나 아니면 자기존재의 기반을 일본에 두고 있는 그야말로 토착왜구인 것이다.


역사연구의 두 가지 방법 실증주의와 현재주의는 서로 상호보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거기다 또 한 가지를 더 보태야 한다.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다시 말해 당시 조선인들이 일본의 식민 지배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라는 사실이다. 나는 이를 ‘당대성’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1919년 일어난 3.1 운동이 그 답을 알려준다. 조선 총독부의 기록에 따르면 백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고 한다. 물론 지배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배의 현실을 내면화하기에 강렬한 반일의식을 일상에서 항상 품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를 가지고 조선인들이 일제의 지배를 당연시했다고 정당화 하는 태도야 말로 견강부회가 될 것이다. 간도와 중국대륙에서 일제와 싸웠던 수많은 항일지사들의 존재야말로 당시 조선인들의 의식을 잘 반영한다고 봐야 한다.


한번 상상해 본다. 단 5년만이라도 이영훈 교수와 낙성대 연구소의 연구진들을 잡아다가 고문하고 징용으로 끌고 가고 그들의 가족들을 속여서 정신대로 끌고 가는 장면을. 그리고 난후  다시 식민지 시대를 연구해 보라고 기회를 주었을 때 그래도 그들의 연구결과가 동일하게 나온다면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겠다. 지식이란 그런 것이다. 거품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나름 언론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가 있기에 그들은 마음껏 떠들 수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민주주의을 위해 싸워왔던 결과가 아니겠는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그 자유를 이용해 가해의 당사자를 옹호하고 있다.


해방 후 무려 74년이 지났음에도 친일의 잔재를 정산하지 못한 대가로 아직도 친일의 무리들이 우리의 생각과 영혼을 좀먹고 있다는 것을 새삼 뼈저리게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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