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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간관

영향을 준 책들

by 헤세

2025년 3월 29일(토)

나는 주로 새벽에 글을 쓴다. 주제는 주중에 메모해 놓은 것들 중에서 찾아서 쓰기도 하고 책을 읽다가 떠오른 영감을 붙들고 글로 옮기기도 한다. 내가 써온 글들을 읽다 보니 내가 시간에 참 관심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맞다. 나는 시간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시간의 유한성에 대해 많이 생각했었다. 내가 젊은 시절 시간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처음으로 접한 책은 유성은 목사의 <시간관리와 자아실현>이었다. 이 책은 시간관리 분야의 베스트셀러였다. 통찰이라고 불리는 깨달음이 가득 들어 있는 책이었다.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또 읽으며 내 것으로 만들려고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시간관리는 결국 목표관리이며 나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삶의 지혜라는 사실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계획하는데 별로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실행에 옮길 수만 있다면 인생을 계획하는데 투자한 시간이 몇 배 이상으로 절약되어서 되돌아온다는 내용이 기억에 난다. 그러나 지식이 지혜로 바뀌기 위해서는 내면의 성숙이라는 수업료를 치러야만 한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다 해도 실행으로 옮기지 않으면 소용없다. 자기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으면 그냥 지식일 뿐이다. 이 책의 지혜가 내 안으로 스며들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두 번째로 내가 시간에 관해 영향을 받은 책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다. 평생을 방황하며 방탕하게 살았던 어거스틴은 결국 기독교에 귀의해서 초기 기독교의 교리 체계화에 많은 업적을 남긴다. 그의 대표적 저서 <고백록>에서 흔히 ‘시간에 관한 장’이라고 불리는 13장에 시간에 관한 그의 통찰이 나온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서 기억 속에 존재하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서 기대 속에 존재한다. 나는 오로지 현재만을 직관할 수 있다. 따라서 “시간은 영혼의 분열이다.” 내 인생을 깨운 구절이다. 카르페 디엠!! 지금을 살아야 한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준 책이다.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면서 이 구절은 나의 첫 번째 지침이 되었다. 우리 뇌의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이 해마이다. 해마는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개인이 경험한 내용 중 새롭거나 강렬한 경험을 장기기억으로 넘긴다. 지금을 사는 사람은 집중력이 높기에 각성된 상태에서 많은 정보를 받아들인다. 시간이 길다고 느끼게 된다. 실제로 하루가 길다. 물리적 시간의 길이는 아무 의미가 없다. 개인이 느낀 시간의 길이가 경험으로 남아 기억된다. 무의미한 10년, 강렬한 1주일이 그래서 생겨난다. 여행이 기억에 오래 남는 이유이다. 새롭고 강렬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내가 시간이 미래에서 현재를 거쳐 과거로 흐른다는 통념을 깨고 시간은 현재에서 미래로 흐른다는 통찰을 갖게 해 준 책이다. 인생의 본질은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는 데 있다. 도전하는 삶이 아름답다. 머뭇거리고 있을 때 아니다.

네 번째는 칙센트 미하이의 <몰입의 법칙>이 다. 행복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심리학적으로 분석했을 때는 몰입의 상태가 행복을 느끼게 해 준다. 취미에 몰두하거나 연인과 사랑에 빠졌을 때 모두 몰입된 상태이다. 현재에 몰입하는 것이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이다. 우리는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고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과 근심으로 불안에 시달린다.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나 존재가 있다면 행복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물아일체, 삼매경 모두 몰입의 상태를 표현한 말이다. 단 도박이나 게임에 빠지는 것은 몰입이 아니라 중독이다.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이 다르다.

국외에는 칙센트 미하이 교수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몰입 전문가 황농문이 있다. 몰입은 훈련으로 가능하다. <Think Hard! 몰입>이라는 책은 초 베스트셀러이다. 물론 이 책을 읽었다고 바로 몰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주변을 물리치고 실행으로 옮겨야만 할 것이다. 내 삶을 멋지게 살아내겠다는 절실함이 이를 가능케 할 것이다.

그리고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나는 니체가 한 말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어떤 대상”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스스로 위대해지고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다가오는 어떤 어려움도 무한긍정의 태도로 받아들이고 맞서 싸운다. 니체의 당당하고 오만한 태도가 필요하다. 가치의 전복은 니체사상의 정수이다. 니체가 말한 ‘중력의 영’은 평범한 일상에 묶여

습관적으로 살아가는 태도이다. 도덕과 관습, 인습에 맞서 싸우며 초인이 되고자 한다.

과학책으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들 수 있다. 질량을 가진 모든 물질은 주변에 시공의 왜곡을 불러온다. 모든 물질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차원 안에 존재한다. 각자 가진 질량에 따라 고유한 시간의 흐름을 소유한다. 시간은 상대적으로 흐른다. 최초의 시작은 대폭발이다. 최신의 과학이론을 아직 접하지 않아서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다. 그렇다면 대폭발 이전에는 시간과 공간이 없었단 말인가? 과학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과학과 종교의 영역에 대해 묻고 있다. 근원을 묻는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물리학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존재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물리학만으로 세상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나는 영원을 꿈꾼다. 물리학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지금을 살면 시간을 초월할 수 있다.

유한한 삶을 한탄하기보다 주어진 시간을 후회 없이 사는 것.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끝이 있음을 알고 받아들이고 대신 유한의 시간을 무한으로 바꾸는 도전을 한다. 작가로서 내가 할 일은 감히 말하건대 불멸의 작품을 남겨 영원을 살게 하는 것이다. 비록 그 꿈을 이루지 못할지라도 도전의 과정이 아름다운 것이다. 허무의 개입을 원천차단하고 도달할 목표를 향해 심장이 멎을 때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자연은 봄이 오면 꽃이 핀다. 그러나 인생은 꽃을 피워 봄을 불러온다.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고행은 꽃을 피워 봄을 맞이하기 위한 거룩한 제사이다. 나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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