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전쟁인가?
2025. 03. 23 (일)
나의 이중성
주말 여유를 이용해 HBO의 전쟁시리즈 <퍼시픽>을 감상했다. 쿠팡플레이가 새로 업로드했다. 전쟁을 미워하고 반대하는 글도 쓰고 표현을 주기적으로 하면서도 모순된 태도로 전쟁영화를 정말 즐겨본다. 어느 날 문득 이러한 이중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러한 모순이 나의 위선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나 자신도 궁금했다. 직관적으로 든 생각은 나의 이성은 전쟁을 혐오한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정작 나의 본능은 파괴적이고 호전적인 자극을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내가 지닌 이중성이 인간이 간직한 본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이상과 현실
나는 왜 전쟁영화를 좋아하는가? 하지만 잔인한 호러물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연쇄살인마의 잔인한 시체 절단이라든지 학대 같은 것은 별로 보고 싶지 않다. 반면 검투사들의 검투장면은 좋아한다. 그렇다고 UFC경기를 즐겨보거나 열광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생존의 본능이 있다. 살아남으려고 하고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안전해지려는 근본욕구가 있다. 전쟁영화는 그런 나의 욕구를 대리만족시켜 준다. 나약한 개인은 국가가 일으킨 전쟁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한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는 강력한 명분이 필요하다. 침략을 방어해야 하는 경우는 아주 강력한 명분이 생긴다. 나의 재산과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 내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자의든 타의든 참여한 전쟁에서는 전쟁의 룰을 따라야 한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를 죽여야 하는 것이다. 두려움에 떨며 전쟁에 참여한 평범한 사람들은 몇 번의 실전을 거치면서 전사가 되어간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는 경험에 잠 못 이루고 충격을 받지만 감각이란 수차례 반복되면 무뎌진다. 점차 살인에 둔감해지고 심지어 즐기기까지 한다. 살인을 합법적으로 인정해 주는 유일한 공간이 전쟁터이다.
평범한 인간이 평생에 걸쳐하기 힘든 강렬한 체험을 짧은 기간 동안 하게 된다. 가장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본성은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생과 사가 교차하는 현장을 매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드라마로 그 장면을 보는 것도 직접 체험하는 것보다는 강도가 약하겠지만 아주 강렬한 간접체험이 된다 아마 그 강렬한 체험 때문에 전쟁드라마를 즐겨 보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보는 것과 직접 체험하는 것은 너무 다르다. 드라마를 보면서 전쟁의 현장에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할 때가 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어가는 전우를 보며 나 또한 상대를 죽이며 지옥 같은 삶의 한가운데 있는 나를 상상해 본다. 살인과 폭력이 일상이 되고 그 속에서 옆의 전우와 웃으며 농담을 나누는 모습들.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나의 일상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감당할 수 있을까? 전쟁 드라마를 즐겨보는 나의 이중성의 근원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 안에 있는 생존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드라마를 통해 대리 충족되고 있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에서는 절대 채울 수 없는 욕망이며 경험이다. 원초적인 삶의 욕구가 자극받고 내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검투 경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일단 검투장에 들어간 순간 죽든가 죽이든가 둘 중의 하나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를 죽여야 한다. 나약하게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다. 극한의 힘과 생존본능이 작동한다. 어쩌면 인생의 본질이 극적으로 드러나는 곳이다.
하지만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의 일상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단기간의 극적 체험은 인간성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트라우마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인간을 반복적으로 죽이는 극단적인 경험은 절대 잊힐 수 없다. 그리고 일상으로 복귀하더라도 지금까지 압도적으로 분비되던 도파민은 더 이상 분비되지 않는다. 전쟁 같은 강렬한 체험은 일상에서 경험하기 힘들다. 우울에 시달릴 것이다. 살인의 체험은 이제 가능하지 않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릴 것이다. 계속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기억이 떠오르고 일상의 삶을 살지 못하도록 괴롭힐 것이다. <디어헌터>, <하얀 전쟁>이 전쟁의 후유증을 다룬 영화들이다.
삶은 전쟁인가?
문명과 도덕 속에 고이 묻어 두었던 원초적 본능이 극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전쟁터이다. 간혹 인생을 전쟁같이 사는 사람들이 있다. 본능에 충실하게 내가 살기 위해 상대를 죽이며 리스크 큰 모험을 감당하며 승리의 전리품을 챙긴다. 그들은 말한다 인생은 전쟁터라고. 나약하게 일상에 파묻혀 한가한 여유를 즐기고 있을 틈이 어디 있냐고. 아주 극소수의 사람이 인생을 전쟁터로 여기며 살아남고자 또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모든 것을 건다. 그리고 부와 권력을 쟁취한다. 맞다. 그들은 매일을 전쟁 속에서 산다. 그래서 과감하고 두려움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솔직하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얼마나 다양한가? 내가 하는 일은 글로써 세상을 모방하는 일이다. 그래서 간혹 이 넓고 다양한 세상을 미처 다 알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엄습한다. 책으로는 다 알 수 없는 세상이다. 그런데 몸으로 직접 체험하자니 시공의 한계가 너무나 명확함을 날마다 느낀다. 나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그럼에도 다만 주어진 현실에 머무르지 않고 날아오르려고 계속 도전할 뿐이다. 이제야 비로소 태양을 향해 날아가던 이카루스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소설 <날개>가 나의 마음을 대변해 준다. 아마 이상도 하늘 높이 날고 싶었던 것 같다.